[대영웅] 대세(10)
기사입력 1998년 02월 26일 15시 30분
6월 중순의 오시 무렵이어서 대평원은 한낮의 열기에 덮여 있었다.
이쪽의 평원은 요양성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메마른 땅에는 풀 한포기 자라지 않았고 쉴새 없이 열풍이 휘몰아쳤다.
사람은 커녕 짐승도 다니지 않는 땅이었는데 하이도로서는 요긴한 완충지 역할이 되는 곳이다.
이 열사의 땅을 건너야만 중원땅을 밟을수 있었고 중원의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열사를 견디며 지나야 북쪽 자신의 영토에 닿는 것이다.
하이도는 마상에 앉아 가늘게 뜬 눈으로 남쪽을 바라보았다. 윤의충이 기병 7만을 거느리고 감숙성을 떠난 것은 열흘 전인 6월초 였다.
치중대도 기병으로 구성된 완전한 몽골식 기동대였는데 하루의 진군 속도는 놀랍게도 200리가 넘었다.
열사의 땅을 단 열흘만에 주파하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이도는 40대 중반으로 단단한 체격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이었다.
몽골제국 2대 황제인 오고타이를 할아비로 모신 황실의 가문이다.
머리를 돌린 그가 옆에 선 향비를 바라보았다.
"감숙성의 장수 대부분과 몽골인 부사령 에르케까지 윤의충을 따르기로 했다니 인덕이 높은 놈이다."
"그럴수록 폐하께 불편한 존재가 되지요."
앞을 바라본채 향비가 싸늘하게 말했다.
"열사를 열흘 밤낮으로 건넜으니 칼을 쥘 힘도 없을 것입니다. 이곳을 그자의 무덤으로 만들지요."
그러자 하이도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지금 그는 기병 20만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쿠빌라이 한테도 한번도 패한적이 없는 하이도였다. 이년전 보르투의 대회전에서 그는 3만 기병만으로 쿠빌라이의 25만 대군을 갈갈이 찢어 놓았던적도 있다.
"나는 고려인이 간사하고 아부에만 능한 족속인줄 알았었다."
하이도가 웃음띤 얼굴로 향비를 바라보았다.
향비는 그의 사촌 누이가 된다.
"약소종족으로 어쩔수 없는 자기방어 수단이겠지만 섬에 틀어박혀 백성을 보살피지 않는 집권층을 경멸했었지."
그는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쿠빌라이는 물론이고 내 간곡한 제의를 물리친 저 놈의 웅지는 내 못지가 않다."
"꼭 베셔야 합니다."
이제 향비의 말투에는 열기가 띠어졌다.
"지금 베시지 않으면 크게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지평선의 한쪽 끝이 흔들리더니 일대의 군마가 쏜살처럼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자랑하는 척후대이다. 이윽고 하이도의 앞에 다가온 대장이 말에서 뛰어내려 무릎을 꿇었다.
"폐하, 윤의충이 30리 앞으로 다가왔소이다. 진형은 그대로 종대(縱隊)를 이루었고 윤의충은 선봉에 있소이다."
"허어, 그놈도 척후를 띄웠을 터이니 내가 이곳에 막아서 있는 줄을 알았을 텐데."
턱수염을 비튼 하이도가 옆에선 총사령을 바라보았다.
"전군을 전투 위치로 하고 대기하도록."
전령이 사방으로 달렸고 북이 울리면서 20만 대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향비가 말고삐를 채어 하이도의 옆으로 다가섰다.
"폐하, 소녀에게 선봉을 맡겨 주십시오."
그러자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하이도가 다시 웃었다.
"같이 죽을테냐?"
하이도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너와 나는 핏줄이 같다. 그래서 나는 네 마음을 읽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