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야구세상] '추잉껌 씹는 이상훈'
기사입력 1998년 02월 18일 15시 31분
이상훈이 떠났다.
떠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이상훈은 행복하게 보인다.
대개 보내는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보내는 우리도 행복하다.
그가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더 넓은 세계에서 마음껏 그 기량을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제 이상훈은 완전한 프로페셔널로서 메이저리그 30개구단과 어마어마한 액수를 놓고 `프로적인'협상을 벌일 것이다.
물론 한국의 프로야구 역시 이번 IMF한파를 맞아 냉철한 연봉협상을 벌였지만 이상훈은 이제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미국식으로 모든 것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상훈에게는 미국이라는 토양이 한국의 흙보다는 더 잘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를 사랑했고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미워했다.
그래서 그의 야구선수로서 생활은 굴곡도 있었고 팀에서 이탈도 있었다.
이상훈은 야구를 업으로서 하는 동양적인 사고보다는 야구가 좋아서 즐기기 위해서, 삶에 기쁨을 주는 수단으로서 야구를 해온 야생마 같은 선수였다.
이미 일본의 노모가 일본을 떠나면서 `야구를 좋아하며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서'라고 미국진출 이유를 밝혔듯이 이상훈역시 야구 선수로서 무한한 자유를 선택하고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서 미국행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박찬호에 이어 지켜볼 이상훈이라는 `사랑스러운 한국인'이 생겼다.
그렇지만 나는 이상훈을 바로 그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한국인'으로부터도 벗어나게 해줬으면 한다.
언젠가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특파원이 한국사람들의 지겨울 정도로 열렬한 국수주의를 박찬호의 경우를 들어 꼬집은 글을 썼다.
한국의 스포츠신문이나 스포츠면의 기사를 보면 메이저리그에는 박찬호밖에 없는 것 같다고.
오로지 박찬호의 일거수 일투족만 `자랑스러운 코리언'하고 열정적으로 미친듯이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덧붙이기를, 일본에서는 노모에 대해서 그 정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미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수많은 일본선수가 있고 그들은 단지 미국의 본토야구를 경험하고 싶은 단순하고도 소박한 이유로 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글에는 바로 이렇게 국제화를 느긋하게 이뤄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자랑이 섞여있었다.
이상훈이 미국에서 당당한 국제인이 되어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으면 한다.
굳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무개에 이상훈을 가둬둘 것이 아니라 갈기를 휘날리는 야생마처럼 국적도, 고국에 있는 고마운 팬들도 잊어버리고 `미국야구'만을 그가 생각했으면 한다.
박찬호가 경기를 시작하고 끝낼 때 얌전히 동양식으로 고개숙여 인사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라면 우리의 이상훈은 추잉껌을 씹으며 미국관객들과 일체화된, 그리고 그들의 사랑도 듬뿍 받는 미제 야구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의 이상훈은 야구선수 박찬호가 이룬 `국제화'를 넘어서서 완벽한 `현지화'를 그 새로운 땅 미국에서 이루기를 팬으로서 열렬히 바라기 때문이다.
[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