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16)
기사입력 1998년 02월 17일 15시 48분
사파리 스타팅 멤버는 12마리.
수컷 7마리에 암컷 5마리였다.
문제는 이들을 다스릴 우두머리가 누가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우냐, 킹이냐.
동물원 관계자들의 관심이 온통 초대 챔피언에 집중된 가운데 이들의 대결은 76년 4월 7일 이뤄졌다.
"덜컹."
"덜컹."
아파트에서 간이방사장으로 통하는 문 2개가 동시에 열렸다.
지난번 준결승전 때 먼저 나간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결승전은 공평하게 치르기 위한 배려였다.
바우와 킹은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동안 간이방사장에서 암컷들과 데이트를 하던 이들은 `외출＝데이트', `간이방사장＝데이트 장소'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날도 아파트 문이 열리자 이들은 암컷과의 데이트를 상상하며 한껏 들뜬 마음으로 간이방사장에 나왔던 터였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미녀' 대신 `야수'라니.
둘은 황당함과 당황함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우와 킹은 누구를 만나든지 박살을 내고, 자신의 밑으로 깔아야 직성이 풀리는 `왕족 기질'을 타고난 수사자가 아닌가.
상대의 눈빛에서 `복종하겠다'가 아닌 `내가 왕이다'라는 메시지를 읽은 이들은 곧바로 정벌의 칼을 뽑았다.
성욕 대신 승부욕에 사로잡힌 셈이다.
선공은 킹의 몫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예선전과 준결승전에서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했던 킹은 또다시 현란한 발놀림으로 뛰었다.
킹의 좌우 연타가 바우의 얼굴에서 튀었다.
바우가 뒤늦게 주먹을 내놓았으나 킹은 이미 사정권 밖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킹의 주먹이 바우 얼굴을 난타하고, 바우 주먹은 봄바람을 가르는 양상이 계속됐다.
바우 얼굴은 잘못 인쇄된 `음악공책'처럼 오선지가 어지럽게 그려졌고, 군데군데에서 핏발도 비쳤다.
바우는 잔 펀치를 맞으면서 킹을 구석으로 몰려고 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우의 얼굴은 쥐어짠 행주처럼 마구 구겨졌다.X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