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36)
기사입력 1998년 02월 12일 15시 23분
카라차르는 칼을 휘둘러 다가온 남송군 장수의 어깨를 베었다.
이미 난전이 되어 있어서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는 상황이다.
"대감！ 이쪽으로！"
감숙성에서부터 따라온 위사장 혼소가 피투성이가 되어 소리쳤다.
"대감！ 한수쪽으로 옮기십시오！"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요양행성군이 왔다！"
창끝이 날아왔으나 혼소가 쳐냈다.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듯 울리고 있었으므로 감숙성군은 부쩍 사기가 오른 대신 남송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양군이 섞여진 지금 상황은 송군이 두배나 많은 병력이다.
카라차르는 한꺼번에 부딪쳐온 송군 장수 두명의 칼날을 막았다.
옆쪽에서 혼소가 한명을 베었고 나머지 한명은 난군 중에 섞여져 보이지 않았다.
"대감！ 조금만 더 견디시면."
카라차르를 피신시키려던 혼소도 마음을 바꿔 미친듯이 칼을 휘둘렀다.
구광이 오늘은 선봉이다. 그는 언월도를 휘둘러 잡풀을 베듯이 앞길을 뚫었다.
눈을 부릅뜨고 나선 그의 모습은 마치 절간문안의 사천왕중의 하나였다.
"비켜라！ 잡종놈들아！"
그의 앞길은 무인지경이나 다름 없었고 뒤를 따르는 여진 기마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구광이 목표로 삼은 것은 백보쯤 앞의 영기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카라차르를 공격한 남송군의 주장(主將)이 있을 터였다.
구광의 말이 기진했는지 헐떡거리자 뒤를 따르던 부하가 재빨리 빈말을 옆으로 끌고 왔다.
달리면서 말을 옮겨탄 구광은 언월도를 번쩍 치켜 들었다.
이제 영기는 오십보쯤 앞이었고 영기 주위에는 위사로 보이는 기마군이 빽빽이 늘어서 있다.
"저 놈이 누구냐?"
남송군 3만기를 이끈 주포산이 눈을 치켜떴다. 그는 구광이 백보쯤 후방으로 다가왔을 때에야 보았던 것이다.
주위 장수들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혀를 찼다.
장수 세명이 구광을 향해 달려갔고 그 뒤를 위사 십여명이 내달아 구광을 막았다.
그순간 주포산은 눈을 부릅떴다.
언월도가 빗살 보다도 빠르게 휘둘러져 장수 셋이 동시에 말에서 떨어진 것이다.
무서운 괴력이었다. 저런 괴력 앞에서는 검법도 필요가 없다.
그 다음 순간 주포산은 와락 다가온 구광의 면전에 세워졌다.
그를 가로막았던 위사들이 쓰러졌고 이를 악문 주포산이 칼을 들어 구광의 언월도를 막았으나 칼에 밀려 몸이 젖혔다.
"이 잡종놈！"
벽력같이 소리친 구광의 언월도가 다시 날아 주포산의 몸통을 베었다.
"주장을 베었다！"
함성과 고함이 하늘을 울렸다. 여진군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카라차르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는 이미 온몸에 깊은 상처를 입어 말에서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상반신을 역시 만신창이가 된 위사장 혼소가 받쳐들고 있었고 주위에 위사 서너명이 등을 보이며 둘러서 있다.
"주장을 베었다는 구나."
입가의 피를 뱉으며 그가 말했을때 무서운 기세로 일대의 기마군이 다가왔다.
요양성병마절도사의 영기가 보였다. 윤의충이다. 카라차르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띠어졌다.
"저기 내 아우님이 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