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인트] IMF시대 3만원 빌리는 법
기사입력 1998년 02월 06일 15시 40분
요즘 우린 단단히 치르고 있다.
돈 귀한 것을 여실히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전엔 `3만원' 정도는 우습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액수마저도 빌리기가 대단히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대신 그런 소액을 꾸는데도 온 갖 예(禮)를 다 갖추거나 갖은 기술을 다 동원한다.
이 사무실 풍경을 한 번 보시라.
1. 비굴형－`헤헤！ 미스김, 여자들 주머닌 마르지 않은 은행창고 더라구…. 그 많은 돈 중에서 3만원만 어떻게 안될까…. 라고 내가 왜 그런 말을 하고 있지…. 에이 놔 두라구！ 에, 그러나 말 나온 김에 얘긴데… 딱 이틀만 쓰고 갚을테니까… 이 거 과장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구먼.'
2. 핑계형－`과거에 점심이나 퇴근 후 회식이다 노래방이다…. 그런데 가면 누가 돈을 냈지?！
나, 이과장은 우리 과원들 치다꺼리 하다가 늙었다니까. 그런데 지금의 난 뭐야！ 그 깟 돈 3만원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하니… 어? 벌써 4시 31분이군. 은행은 문을 닫았고 경리실은 그 최부장 꼴 보기 싫어 근처에 가기도 싫고… 허참！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 봐. 양심 있으면 3만원만 꺼내！'
3. 담보형－`미스김, 이거 은행신용카드야. 주민등록증하고 대조해봐도 좋아. 틀림없이 내 것이니까. 아님 뭐 아예 이 예금통장을 맡길게.
나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 줄 알지? 차용증도 써 주지 뭐！ 보증인도 세우지…. 3만원만 빌려 줘'
4. 자존심 손상형－`이 거 미스김에겐 아마도 무리일거야. 어디 그 게 적은 돈인가 말야.
미스김이 그런 돈을 갖고 다닐리 만무고… 에이 그만 둬！
미스 박이라면 3만원은 지니고 있을거야.'
5. 동정심 유발형－`으흐흑！ 이런 비극도 없을거야.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됐는지, 그렇다고 이런 소리는 죽어도 못하는 내 소심한 성격에 아무나 붙잡고 3만원 타령을 할 수도 없고… 차라리 옥상에 올라 가서 콱∼！…'
6. IMF형－`미스김！ 그동안 내가 돈을 함부로 펑펑 쓴거 같아. 앞으론 내가 용돈을 쓸 때마다 마누라 아닌 미스김에게 물어서 타당한 지출인가를 허락 받을 거야. 구제금융 3만달러 아니 3만원만 꿔 준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