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21)

기사입력 1998년 01월 24일 13시 17분


카라차르에게 척후장교가 달려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진막 안으로 들어선 장교가 무릎을 꿇었다.

"대도독, 장세걸이 진로를 바꿨소이다. 대안을 따라 궁곡리 뒤쪽으로 진군하고 있소이다."

"뒤쪽으로 간다고?"

이맛살을 찌푸린 카라차르가 다그치듯 물었다.

"진로를 언제 바꿨느냐?"

"어제 저녁무렵이오. 하귀의 3만 기병도 합류 했소이다."

옆에 서있던 부도독 알탄이 입을 열었다.

"장세걸은 우리 감숙성군과 접전하려는것 같소이다."

주위의 장수들을 둘러본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대도독, 고려군은 삽시간에 남송군의 말발굽에 짓밟힐 것이오. 본진을 궁곡의 뒤쪽으로 옮겨 장세걸을 맞아야 합니다."

카라차르가 머리를 끄덕였다.

"고려군을 선봉으로 삼고 우리가 뒤에 붙는다. 요양성군은 예비대로 남아 대기하도록."

진막 안이 술렁거렸고 근위장수의 지시를 받은 전령이 뛰어 나갔다. 알탄이 그에게로 바짝 다가와 섰다.

"대도독, 장세걸이 멀고 위험한 대안길을 택하여 요양성군과의 접전을 피하려는 이유가 궁금하오."

"…."

"요양성군의 여진기병이 용맹하긴 하나 장세걸은 5년간 우리 원제국의 대군을 상대한 용장이오. 겁낼 인물이 아닙니다."

"…."

"더구나 장세걸은 기병만 8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소이다. 그런데도."

"아마 고려군과 감숙성군이 상대하기 쉽다고 생각했겠지."

알탄의 말을 자른 카라차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생각 할것 없다. 정남대장군 윤의충은 이미 그것도 예상하여 요양성군의 기병 3천을 고려군에 떼어주었다."

그 시각, 강건너 백리지점에 위치한 바얀의 총사령 진막 안에도 작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윤의충이 감숙성군의 뒤를 친다면 우리 정벌군의 선봉은 일시에 궤멸 됩니다."

그렇게 말한 장수는 감군(監軍) 마탈이다.

"그렇게 되면 장세걸은 여세를 몰아 우리 포위군의 측면을 칠것이고 번성의 5년 공략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오."

진막 안은 숙연한 분위기였다. 부사령 사천택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는데 만일 윤의충을 두둔했다가 배반한다면 동조자로 몰려 처형 당할수도 있는 것이다.

마탈이 바얀을 바라보았다.

"총사령께서 영을 내려 요양성군을 앞으로 내세우도록 하시는 것이."

"…."

"그래야 감숙성군으로 윤의충을 감시할 수가 있소이다."

마탈은 몽골인으로 쿠빌라이로부터 직접 직첩을 받은 감군이다.

이윽고 머리를 든 바얀이 제장들을 둘러 보았다.

"근위장군 테이만이 어디 있느냐?"

"여기 있소이다."

장수들을 헤치고 테이만이 나서자 그가 턱으로 마탈을 가리켰다.

"이자를 잡아라."

순간 진막안은 차가운 정적에 덮였고 마탈에게 다가간 테이만이 팔을 움켜 쥐었다.

"잡았소이다. 총사령."

"잡았다면 혀를 뽑아라."

이미 사색이 된 마탈을 바라보며 바얀이 빙긋 웃었다.

"시끄러워 견딜수가 없다. 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