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18)

기사입력 1998년 01월 21일 13시 17분


이도명의 뒤를 따르던 장군 오태일이 옆으로 다가온 장군 최경부를 바라보았다.

"몽골인 부도독은 윤의충의 심복이더구만, 기세등등하게 윤의충의 편을 드는 것을 보아."

그가 힐금 앞쪽의 이도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상장군은 윤의충에게 말한마디 건네지 못했네 그려."

"대도독이야. 장군은 윤의충의 명을 받아야할 처지야."

뱉듯이 말한 최경부가 목소리를 낮췄다.

"하긴 김준이 살아 있었다면 윤의충도 이미 고려국 상장군이 되어 있겠지."

"몽골 황족인 카라차르도 윤의충에게 깍듯이 공대하데 그려."

"같은 절도사에 대도독이 아닌가? 게다가 군세는 윤의충이 크고."

"카라차르는 김영의 지아비 아닌가? 윤의충의 마음이 편치 않겠는데."

"내색한다면 장부가 아니지. 윤의충은 그런 사내가 아닐세."

"허어, 자넨 윤의충을 경모하는것 같구만 그래."

그러나 최경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고려땅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말을 꺼낼 수도 없을뿐만 아니라 밀고하면 그날로 반역도당으로 몰리는 것이다.

고려군의 주둔지로 돌아간 이도명은 진막으로 제장들을 불러모았다.

고려를 떠나 이역만리 대륙의 중심부로 이동해와 곧 결전을 앞둔 때여서 장수들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이도명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만명을 차출하여 궁곡의 뒤쪽에 진을 친다. 이정지의 기마군이 뒤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 소임이다."

장수들이 술렁거렸다. 치중대 역할의 고려군은 궁곡 안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도명이 말을 이었다.

"기마군을 막으려면 목책을 세우고 함정을 파야 할것이야. 지금 즉시 출발해야 늦지 않는다."

"장군."

대장군이며 고려군의 부사령인 한석기가 입을 열었다.

"이정지의 5만 기마군이 뒤쪽으로 온다면 고려군 2만으로 막을 수가 없소이다. 더구나 우리는 기마군이 이천 뿐이오. 지원군을 얻어야 하오."

"뒤쪽으로 올 가능성은 적다."

이도명이 자르듯 말했으나 한석기는 물러나지 않았다.

"장군, 병법에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소이다. 주장께 청하여 기마군의 지원 만이라도 받아야 하오."

제장들 사이에 끼어있던 오태일과 최경부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도명은 카라차르와의 작전회동때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지원요청을 했어야 했다. 이도명이 머리를 저었다.

"감숙성군과 요양성군은 지원군을 보낼 여력이 없다."

그때 진막밖이 소란스러워 지더니 장수 하나가 서둘러 들어섰다.

"아뢰오. 요양행성 병마절도사 이시며 정남대도독께서 오셨소이다."

놀란 이도명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제장들이 일제히 긴장을 했다. 윤의충이 온것이다.

곧 막이 걷혀지면서 근위장수를 선두로 대도독 복장의 윤의충이 들어섰다. 그의 뒤를 장수들이 줄을 이어 따른다.

서둘러 다가간 이도명이 허리를 굽혔다.

"대도독께서 진을 찾아 주시니 영광이오."

윤의충은 그냥 허리를 세운 자세로 고려군 장수들을 둘러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장수는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