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14)
기사입력 1998년 01월 17일 15시 41분
남송의 황제는 이종(理宗)이었으나 재상 가사도가 국권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는 쇠퇴해가는 남송제국을 일으킬만한 그릇이 못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쪽으로 밀려났지만 수백년간 중국대륙을 지배해온 한인의 송제국이다.
충신과 명장이 많았으며 초야에 묻힌 열사도 부지기수였다.
남송 정벌의 관문인 양양을 지키는 수비대장은 여문환(呂文煥)으로 전(前) 수비대장 여문덕의 동생이다.
그는 지용을 겸비한 장수여서 장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양양은 악주 부근에서 양자강과 합류하는 한수(漢水)가 섬서성 산지에서 호북평야로 흘러가므로 섬서와 하남지방에서 양자강 중류로 나가는 교통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중국대륙이 남북으로 분열 되었을때는 언제나 전화에 휩싸인 곳이었다.
양양성의 대안에 위치한 번성은 또한 양양성의 관문이었다.
이곳의 수비장수는 장한영, 범천순, 우부 등이었는데 그들 또한 용장이다.
지난 5년 동안 포위된 상황에서 수십번의 전투를 치렀으나 결코 성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윤의충의 정동행성군이 주둔한 위치는 전선의 우측 끝이었다.
분지여서 번성은 강 건너 좌측에 있었으므로 보이지 않았지만 가끔 송군의 수색대가 강을 따라 부대 앞을 지났다.
이른 아침이었다.
부연 안개가 장강위에 덮여 있어서 긴장한 초병이 자주 수하를 했고 전령의 말굽소리만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본진의 진막안이었다. 갑주는 입었으나 맨머리 차림의 윤의충이 나무걸상에 앉아 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몽골군사 차림으로 허리에는 전령의 붉은 띠를 둘렀는데 30대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부사령의 은밀한 지시란 무엇이냐?"
윤의충이 묻자 사내는 서너번 눈만 깜박였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아침 일찍 부사령 사천택이 전령을 보낸 것이다.
전령이 입을 열었다.
"대도독, 소인은 송제국의 태사 채번의 밀명을 받고온 소삼이라고 하오. 사천택의 전령이 아니 올시다."
윤의충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채번이 가사도의 모함으로 귀양 갔다고 들었는데 복귀 했느냐?"
"예. 서너달 되었소이다."
사내의 얼굴에 생기가 살아났다. 목숨을 걸고 있었을 것이다. 채번은 고려를 떠난 윤의충이 여진땅에서 만났던 남송의 우국지사였다.
몽골의 허실을 염탐하던 그는 연경 귀홍루의 위태구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던 것이다.
한때 재상 가사도에 의해 귀양을 떠났다는 그가 복귀한 모양이었다.
"그래, 채번의 이야기를 듣자."
"채태사는 대도독께서 번성의 송군과 연합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소이다."
사내가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번성의 수비장수 장한영, 범천순도 대도독께서 호응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소이다."
"채태사의 계략은 옹졸하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윤의충이 말을 이었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을줄 알면서도 너를 보낸것은 이 소문을 퍼뜨리려는 심산이지."
"…."
"또한 너는 목숨을 걸고 왔을터. 잡히면 나와 채태사와 밀약이 있다고 말할 작정이렷다."
그가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전쟁은 진막 안에서부터 시작 되는구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