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비화X파일] 가짜 개그맨(2)
기사입력 1998년 01월 04일 16시 37분
유상철은 서울로 활동 무대를 바꿨다. 한정화가 자신의 정체를 간파한 이상 대전에서 계속 생활하기는 불가능했다. 단란주점 웨이터 자리를 얻은 유상철은 서둘러 돈도 주고 사랑도 줄 새 애인을 찾기에 나섰다.
97년 4월 서울 강동구의 한 백화점.
모 캐주얼브랜드 판매사원인 박정원(27)은 단골 고객인 한 남자로부터 소개팅 제의를 받았다. 저녁에 방송국 개그맨으로 일하는 아는 형과 만나기로 돼 있는데 시간 있으면 나오라는 것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오후8시 약속장소인 백화점 인근 커피숍으로 나간 박정원은 훤칠한 키에 미남형인 유상철의 외모에 마음이 끌렸다.
단란주점으로 장소를 바꾼 세사람은 술과 노래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암사동 고수부지로 드라이브를 갔다. 남자가 잠깐 자리를 뜬 사이 유상철은 박정원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저 녀석 여자 등 쳐먹고 사는 놈이에요. 조심하세요."
"어머 그래요? 알려줘서 고맙네요."
"정말로 고마우시면 나중에 술 한잔 사세요."
며칠 뒤 유상철은 박정원을 백화점 근처 단란주점으로 불러냈고 한정화를 유혹했을 때와 똑같은 수법으로 박정원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죽고 여동생은 자살했어요. 실은 오늘이 여동생이 죽은 날입니다."
유상철은 이어 인근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겨 사랑의 메시지를 적어 건넨다. 흰 메모지 위에 떨리는 필체로 씌여진 `내 앞에 있는 여자가 마음에 든다. 진정으로 이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는 메시지는 이날밤 내내 박정원의 잠을 설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유상철은 며칠 뒤 처음 만난 커피숍으로 박정원을 불러내 데이트를 즐겼다. 늦은밤 박정원의 자취방까지 바래다 준 유상철은 그러나 발길을 돌리는 대신 자취방을 구경시켜달라며 졸라댔다. 커피 한잔 마시겠다며 들어간 뒤 이날 밤을 박정원과 함께 보낸 것은 물론 이튿날부터는 아예 눌러 살기에 이른 것.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였던만큼 박정원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유상철은 그러나 이날 이후 박정원이 근근이 모은 돈을 모조리 뜯어내기 시작했다.
보증을 서준 사람이 도망을 갔다며 500만원을 꿔갔고, 개그맨 생활하는데 필요한 핸드폰, 삐삐, 옷을 사야겠다며 80만원을 빌려갔다. 개그 비디오촬영을 하는데 필요하다며 25만원을 가져간 적도 있으며, 애인에게 더이상 여유자금이 없는듯 보이자 카메라를 빌려다 전당포에 잡히기도 했다.
유상철은 그러나 박정원의 시골 부모에게 인사를 가는 등 애정을 표시하며 의혹을 불식시켰다.
그러던 어느날 대전에서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한정화가 박정원의 연락처를 알아내 유상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려온 것이다.
박정원은 이날밤 유상철에게 사실을 추궁했고 정체가 탄로난 유상철은 새벽을 틈타 자취방에서 빠져나와 새 애인 찾기에 나섰다.X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