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챔피언 꿈 접고 요리왕 도전
기사입력 1997년 06월 29일 14시 04분
"신인왕이 만든 스테이크를 맛보세요."
서울 잠실 올림픽파크텔의 양식부 조리사 고준구씨（26）의 별명은 `돌주먹'이다.
중학교때 소년체전 2연패를 비롯, 지난 89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신인왕에 오르는 등 `사각의 링'에서 날렸던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고씨가 정든 링을 떠난 것은 지난 91년.
주니어플라이급에서 뛰었던 고씨는 눈부상과 체중조절에 실패해 눈물로 얼룩진 글러브를 벗어야 했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피나는 감량을 했건만, 한번 붙은 살은 빠질 줄 몰랐다.
그래도 프로시절 전적은 4전 전승으로 100％ 승률.
권투를 못하게 되자 한때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주먹패들과 어울려 다닌 어두웠던 시절도 있었다.
고씨가 흐트러진 정신을 수습하고, 조리사로 거듭나게 된 것은 지난 92년초.
자취생활을 하며 웬만한 음식은 직접 만들어 먹던 `기본실력' 하나만 믿고 요리학원 수강증을 끊었다.
양식 조리사 2급 자격증을 따낸 고씨는 뉴월드호텔을 거쳐 4년전 올림픽파크텔로 자리를 옮겼다.
"요리와 권투를 `물과 불'같은 사이로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섬세함과 정성이 빠진다면 말짱 도루묵이죠."
1층 커피숍 양식부에서 일하는 고씨의 주특기는 생선요리와 안심스테이크.
지금도 매일 링에 오르는 비장한 심정으로 조리대 앞에 선다는 고씨는 고객들이 음식을 즐겁게 맛보는 것을 볼 때마다 `KO펀치'를 날린 것 같은 쾌감을 느낀단다.
비록 하얀 위생복차림의 조리사로 탈바꿈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권투와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후배로 플라이급 세계랭킹 4위에 오른 임성태 선수를 위해 매달 월급을 쪼개 10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또 틈틈이 자신의 자취방으로 권투하는 후배들을 불러 한바탕 불고기파티를 열어주기도 한다.
고씨는 매일 출근에 앞서 올림픽 체육공원의 3㎞ 조깅코스를 2바퀴씩 도는 로드워크를 하고 휴일에는 권투도장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