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반역 (2)

기사입력 1997년 06월 12일 14시 17분


방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기대원의 심복인 별장 오재환이다. 이재만이 자리를 피했으므로 방안에는 이도명과 오재환 둘 뿐이었다.

"기대감께서 이것을 전하라고 하셨소이다."

오재환이 두손으로 봉서를 올렸다.

기름종이에 싼 얇은 서신이다. 기름종이를 젖힌 이도명이 서신을 읽었다.

방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릎을 꿇고 앉은 오재환은 연경에서부터 기대원을 따라온 고려인이다.

안주에서 역졸노릇을 했으나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몽골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기대원의 휘하에 들어간 인물이다.

이윽고 이도명이 머리를 들었다.

"대감께 잘 알았다고 전하게."

"예. 그렇게만 전하면 되겠습니까?"

"그래도 될게야."

이도명이 힐끗 내려 놓은 편지에 시선을 주었다.

몽골황제 쿠빌라이에게 밀서를 보내 이도명을 몽골제국 예부시랑에 임명토록 추천했다는 내용이었다.

몽골제국의 예부시랑이면 현재 사신으로 와있는 흑적과 동격이다. 오재환이 목소리를 낮췄다.

"대감, 내일이면 진주목에 사신들이 닿습니다. 기대감께서는 변고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무슨 변고 말인가?"

"방호사 윤의충이 극악무도한 자라고 들었습니다. 사신 일행에게 무도한 짓이나 하지 않을까 하고."

"그런일은 없을게야."

이도명이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그자는 냉혹한 성품이긴 하나 김시중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테니까."

"작년에 개경에서 기대감까지 급습해온자 올시다. 위사장 사극이 아니었다면 기대감은 살해 당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김시중은 공공연하게 몽골과의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아."

자르듯 말한 이도명이 오재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윤의충이도 그때와는 다른 입장이고."

그시간에 김준은 위사장 한단과 마주앉아 있었다.

조금전에 윤의충이 보낸 밀사로부터 전갈을 받은 터여서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번쩍이는 시선을 들었다.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은 계집이다."

잠자코 시선을 내리깐 한단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사람을 보내 목만 베어오면 되겠다. 그것으로 이도명과의 관계는 원상으로 되돌아간다."

"대감."

한단이 머리를 들었다.

"내일 오덕도에 흑적과 은홍이 도착합니다. 처리는 그자들이 돌아온 다음에 하시는것이."

"……."

"방호사가 바쁠터인즉 그 일까지 얹혀진다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년은 이제 내 딸이 아니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서두르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미 이도명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진주목에 심어놓은 왕의 첩자가 하나둘이 아닐터이니 이미 왕도 알고 있겠지요."

"……."

"서둘러 베신다면 이미 남이 되어버린 이도명의 위상이나 높여주시는 모양이 됩니다. 원상은 천천히 찾으셔도."

한동안 한단을 바라보던 김준이 마침내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왕과 몽골놈들의 뜻대로는 안될 것이다. 이 김준이가 살아 숨쉬고 있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