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용들의 전쟁 (12)
기사입력 1997년 06월 10일 14시 35분
패트롤카의 개입으로 사태가 진정된 뒤 사파리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곰보살은 믿었던 킹콩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해 대권 경쟁에서 사실상 밀려났고 이제 대권은 킹콩과 맘모스의 대결로 압축됐다.
곰보살의 부상은 컸다.
맘모스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고, 물어뜯긴 앞가슴은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해졌다.
그만큼 맘모스의 파워가 대단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곰보살은 93 대권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병원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곰보살이 사파리에서 사라지자 맘모스와 킹콩은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상대를 잘 아는 만큼 섣부른 공격은 감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기습만을 노리는 것 같았다.
사실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격은 상당한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공격보다는 수비가 쉽고, 수비를 하다가 빈틈을 발견하고 역습을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사파리에 출근한 뒤에도 맘모스와 킹콩은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낮이면 제법 날씨가 따사로웠지만 연못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는 일 따위는 상상도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어린 곰들이었다.
물놀이를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곰들은 어른들이 연못을 비워둔 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자 아예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못에서 살다시피 했다.
얼핏보면 싸움이 전혀 없는 데다 연못에서는 어린 곰들이 노는 동화책 삽화 같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파리는 손 끝만 대도 피지직 탈 듯한 긴장감에 휩싸인 채 하루하루가 지났다.
다만 어린 곰들만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
맘모스와 킹콩은 날이 갈수록 서로 초조해졌다.
암곰들이 이미 발정기가 시작돼 수곰들을 본격적으로 유혹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발정기가 시작되기 전에 왕이 결정돼 질펀한 분위기가 날마다 이어지겠지만 아직 대권 후보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으니 암곰들은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몸을 허락했다가는 뺨에 불이 날 만큼 호되게 얻어맞을테고….
그러나 가장 몸이 단 것은 맘모스와 킹콩이었다.
암곰의 눈치가 무서워서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