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질투의 화신 (4)

기사입력 1997년 06월 08일 14시 37분



맥주를 들이키던 이종민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

"죄송해요. 오랜만에 맥주를 마셨더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요."

겸연쩍은 듯 웃더니 화장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남자같이 걸쭉한데다 말투도 거침이 없었다. 회사에 보물덩어리가 들어왔다고 허원행은 생각했다.

"저런 보물이 어디서 돌다가 이제 들어왔지?"

일을 본 이종민이 손을 씻는데 누군가 등을 툭툭 건드렸다.

"이봐, 아가씨."

"네?"

이종민이 놀라 허리를 폈다.

"나, 알아?"

"아… 아니,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입사 때 편집국장과 함께 면접을 본 여자다. 꽤나 건방지고 별로 아는 게 없어 보이는 여자였다.

"이기자. 나 알지. 그럼 조심해. 허소장님한테 꼬리 치지 말란 말이야."

"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허소장님한테 꼬리 치지 말라고 그랬어. 왜 떫어."

철썩.

장혜정의 손이 뺨을 향해 번개처럼 올라갔다.

동료 기자들이 `장혜정은 실세'라고 일러 주던 기억이 났다.

뺨을 얻어 맞은 이기자가 피실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장혜정씨…."

"장혜정? 장이사님이라고 불러."

"그래요? 그럼 장이사님. 이사님이 소장님 사랑하세요?"

"건방지게… 회사 그만 두고 싶어?"

"아뇨. 오래 있어야죠. 뭔가 오해하신 모양인데 합석하시든가 그냥 돌아가시든가 하세요. 지금 중요한 회사 얘기하는 중이니까요."

이종민은 화도 내지 않고 싱글거리며 웃기만 했다.

`틀림없이 뒤따라 와서 지켜 보고 있었어. 소장님과 내가 연애라도 할 줄 알았나 보지?'

"하여튼 조심해."

휙_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 갔다.

이종민은 한동안 선 채 움직일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여자네.'

더 이상 생각하기 싫었다. 이 일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지금은 허소장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녀가 테이블로 돌아 왔다.

허소장은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기자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아, 죄송해요. 화장실에서 아는 여자를 만나 잠깐 얘기 좀 나누었어요. 말씀 계속 하세요."

허원행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대담하고 선이 굵은 이종민 기자에게 무슨 일이 방금 있었는지를….

"가만 있자. 어디까지 얘기했지."

"박태준 회장님 얘기였어요. …박회장님이 당선되면 정가에 태풍이 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