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수첩] 유인촌 레퍼토리 '홀스또메르'
기사입력 1997년 05월 27일 15시 15분
`중후하게 늙을 것인가, 추하게 늙을 것인가, 아니면 가련하게 늙을 것인가'
극단 유인촌레퍼토리가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공연하고 있는 `홀스또메르'는 이런 주제를 매우 연극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성찰로 풀어낸 수준 높은 무대다.
그저 값싼 감각에 의존, 관객을 유혹하는 무대들이 적지 않은 우리 연극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 무대는 인간이 지닌 탐욕과 욕망 그리고 퇴락을 통해 삶의 문제를 의욕적으로 보여줘 관심을 끈다.
배우들이 동물인 말과 그리고 극중인물을 동시에 그려내야하는 등 세계적으로 무대화가 어렵다고 평가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원작의 이 작품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해내고 있는 것.
얼룩말로 태어나 천대를 받다가 공작에 의해 간택돼 경마에서 우승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는 홀스또메르.
그러나 다리가 부러져 말 상인에게 팔려가게 되고 마침내 자신이 태어났던 마굿간으로 되돌아와 명마로서의 행복한 시절을 회상하며 도살된다.
이같은 말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삶을 우의적으로 표현, 어떤 인생을 살것인가하는 철학적인 명제를 객석에 던져놓는다.
말과 인간을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가 전체적으로 잘 익어있고 5인조의 집시악단들이 들려주는 음악도 들을만하다.
학구적인 자세로 연출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병훈은 그 특유의 사유적인 연극기법으로 이 작품을 성공적인 무대로 만들어냈다. 배우들의 손과 목소리를 이용한 말연기는 인상적이다.
특히 주인공 홀스또메르를 맡은 유인촌의 명연기는 압권이다.
그는 불같은 에너지로 홀스또메르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우리인간이 지닌 삶의 모습을 우의적으로 그려냈다.
객석을 압도하는 엄청난 힘, 그리고 섬세한 감성의 표출 등은 그만이 가진 미덕중의 미덕일 것이다.
여기에 송영창 권성덕 정규수 방은진 등 연기파 배우들의 조연도 작품의 완성도에 큰 공헌을 했다.
작업에 참가한 배우의 부상, 부친상 등 내우외환을 겪으면서도 이만한 작품을 만들어낸 유인촌 레퍼토리에 박수를 보낸다.
6월1일까지. (02) 3444_06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