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ML메세지] 외로운 나날 그래도 성취감에 산다
기사입력 1997년 05월 27일 14시 27분
한국에서 오는 팬들의 편지중에는 내가 너무나 행복할테니 부럽다는 내용들이 가끔 있다.
그때마다 나는 과연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팬들의 생각처럼 과연 내가 선택된 사람이기에 미국까지 와서 야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자리를 빌어 솔직히 말하면 힘들고 고독하며 회의를 느낄 때도 가끔 있다.
운동 선수라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직업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항상 몸관리를 철저히 하고 많은 것들을 참고 견뎌내야만 한다.
어떤 팬 레터에서 운동 선수와 연예인이 비슷하다는 팬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운동 선수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운동이 훨씬 힘들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연예인은 타고난 재능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지만 운동 선수는 철저한 노력과 몸을 혹사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른 스포츠 선수들이 승리하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내가 큰 공감을 갖는 것도 아마 그들이 겪은 고난의 길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는 순간 대개의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나도 물론,친구들과 만나고 싶고 술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항상 몸을 제대로 만들고, 정신을 가다듬어 놓지 않으면 마운드에 올라가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과연 나에게 자유가 있는 것인가 하는 한심한 생각도 든다.
야구에 구속되어 젊음을 모두 바쳐가면서 꼭 야구 선수로 살아야하는가 하는 회의도 든다.
특히 요즘은 힘겹게 던진 몇 경기의 승리를 아깝게 놓치고 또 2번이나 패전을 기록해 더욱 힘들다.
승리하지 못하거나 패전 투수가 되고 나면 더욱 고통스럽다.
물론 항상 우울한 분위기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승리를 하고나면 하늘을 날아갈 기분이고, 팬들에게 기쁜 편지를 받고 나면 상쾌하고 즐거워진다.
그리고 내가 목표로 한 곳을 향하여 차근차근 접근하고 있다는 성취감도 가슴 뿌듯하다.
사실 운동과 경기 일정에 쫓기느라 다른 생각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스포츠 조선의 지면을 빌어 팬들에게 응석을 부려본다고나 할까.
사실 팬들에게 나의 삶의 다른 면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소연 비슷하게 하고나니 가슴이 후련하다.
이제 기분을 정리하고 운동장을 뛰어야겠다.
투수는 계속 달리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