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ML메시지] '외로울때면 승자되자 생각'
기사입력 1997년 05월 20일 14시 03분
시즌 초반 우리 팀 투수들은 참 힘들게 지낸다.
특히 선발 투수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타선이 터져 주지 않아 팀워크가 깨질까봐 불평도 못하고 속이 탄다.
20일（한국시간）만 해도 에이스인 라몬 마르티네스가 2실점 하고 또 패전 투수가 됐다.
최근 17게임에서 선발 투수들의 방어율이 2.15이니 가히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투수진이라도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선발승은 총 승수의 절반을 넘길까 말까 한다.
나 역시 6번 선발로 나서 최다 실점이 4점, 그 다음이 3점이었지만 두번 다 패했고, 7이닝 동안 1점, 0점만 내준 날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2년째를 보내면서 요즘은 야구만 열심히 잘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야구는 농구나 축구와는 다르다.
몸이 부딪치는 일도 거의 없고 직접 패스를 하는 일도 없으며, 공을 던지고 때릴 때 동료라고 도움을 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역시 팀워크는 어느 스포츠나 중요하다.
우리 팀은 워낙 여러 나라에서 선수들이 모인 때문인지 모르지만 때로는 팀워크가 단단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나 중남미 계통, 그리고 동양의 나와 노모 히데오가 겉돌 때가 많다.
중남미계만 해도 도미니칸 공화국과 멕시코계 선수들은 또 다르다.
투수 라몬 마르티네스, 페드로 아스타시오, 우익수 라울 몬데시, 2루수 윌턴 게레로, 내야수 넬슨 릴리아노 등은 도미니칸 공화국 출신이다.
투수 이스마엘 발데스와 안토니오 오수나, 유격수 후안 카스트로는 멕시코 태생인데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번 시카고 커브스전에서 경기 중반 대타로 교체된 릴리아노가 9회말 승리를 굳히는 2점 홈런을 친 일이 있다.
홈런이 거의 없는 릴리아노가 홈런을 쳐서 승리하자 모두 기분이 좋았는데 경기가 끝나고 클럽 하우스에서 몬데시가 `도미니칸 파워'라고 큰 소리를 지르자 기분이 언짢아 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마치 편 가르기를 하는 양상이었다.
솔직히 나는 같은 편이 없는 외톨이다.
동료들과 특별히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만한 선수래야 노장 투수 캔디오티 정도다.
중남미 선수들은 내가 자기들에 비해 일찍 출세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시샘도 많이 한다.
여러가지로 외로울 때가 많다.
그렇지만 해답은 단 하나, 실력을 키워 승자가 되는 길 뿐이다.
내가 빨리 경험을 쌓아 다저스의 기둥 투수가 된다면 팀워크가 단단한 `다국적팀'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