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돈야구보기] '요지경 도깨비판'
기사입력 1997년 05월 19일 14시 16분
`홈런 나와라 뚝딱, 안타 나와라 뚝딱.'
요즘 프로야구는 도깨비 판이다.
9명의 타자가 방망이 한개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해프닝을 벌이는가 하면 부정방망이 시비가 됐던 `미제 미즈노 방망이'를 구입하기 위해 007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또다시 `도깨비 방망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파문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감독들과 구단은 어디서 구했는지 문제의 방망이를 써보고는 "의혹은 있지만 한국야구위원회가 인정했으니 쓸 수 밖에 없다"면서 "이제는 못쓰는 팀이 바보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8일 잠실구장에서 미제 미즈노 방망이를 돌아가며 써본 LG 9명, OB 3명의 타자들 반응을 보면 또다른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 정경배가 연타석 만루홈런을 날리는 등 엄청난 파괴력을 보임으로써 유명해진 문제의 배트도 정확하지 않으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제는 배트의 중심에 맞았을 경우의 비거리와 비행하는 속도다.
지난주에도 지적했듯이 비거리가 1m만 더나가도 홈런이 될 수 있으며 타구의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수비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타자가 엄청나게 유리하다.
더군다나 중심에 맞지 않고 손잡이나 방망이 끝에 맞은 볼도 1m가 더 나가면 안타가 되는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의 방망이를 써 본 LG와 OB선수들은 문제의 방망이가 있다면 당연히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반응이다.
"분명히 파울볼이 되었어야 할 타구가 안타가 됐다."
"타구가 너무 빨라 공포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평범한 외야 플라이 타구가 좀더 나가는 느낌이다."
사실 공동 사용한 방망이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방망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타자들이 써온 일반 방망이는 길이가 다를 뿐만 아니라 무게의 차이도 있고 특히 손잡이 부분의 굵기 등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타자들은 항상 자신에게 맞는 배트를 써왔다.
때문에 방망이가 달라지면 심한 경우 타격감각까지 잃을 수 있다.
그런데도 도깨비 방망이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 선수들의 말이고 보면 구단에서 문제의 배트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LG와 OB, 한화, 쌍방울 등 구단들은 문제의 미국산 미즈노 방망이를 구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미국 현지 공장의 재고가 바닥나 6개월후에나 구입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 2월 삼성에서 558자루를 구입했기 때문에 재고가 없다는 것이다.
각 구단들은 임시방편으로 국내에 유입된 미제 미즈노 방망이를 수소문해 쓰기도 하지만 몇자루 안돼 애를 먹고 있다.
어느 구단에서는 "보통 배트와 미제 미즈노 배트를 강하게 부딪쳤는데 보통 배트는 흠집이 난 반면 문제의 배트는 흔적조차 없었다"면서 "분명히 강도가 있으니 반발력도 좋을 것 아니냐"며 문제의 방망이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무튼 지난 6일 부정방망이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문제의 방망이'는 올시즌 프로야구판을 `도깨비판'으로 몰고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