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선수조련사'서 '물고기조련사'로
기사입력 1997년 05월 13일 15시 14분
정말 부초（浮草）같은 인생이다.
`배불뚝이 야구감독'으로 유명했던 야구인 배성서씨（53）는 지난 89년 MBC（현 LG）감독을 끝으로 야구계를 떠났다가 올시즌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신설한 프로야구 감독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전국을 떠돌아 다니던 그 동안의 삶과 다를 게 크게 없다.
배씨의 실제주소는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남저수지의 `물 위'다.
배씨는 수상가옥에서 금붕어, 향어, 비단잉어 등 물고기를 기르며 살고 있다.
말이 좋아 수상가옥이지 가두리 양식장에 딸린 살림집이 현재의 거처다.
그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티로폴을 깔아 물에 띄워놓은 부유물을 탄 뒤 줄을 당기며 물을 헤쳐야한다.
배씨는 야구계를 떠난 뒤 미국으로 이민갔다고 소문을 낸 뒤 91년부터 이곳에 내려와 양어장을 해왔다.
"도를 닦고 살았지. 하루종일 물만 보며, 부화부터 새끼를 거쳐 고기를 다 길러 식당이나 다른 양식장에 납품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인생을 새로 배운 것 같애."
배씨 양어장에 가면 그의 화려했던 야구역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영남대, 동국대, 한양대 등 대학감독과 아마야구 국가대표 감독을 거쳐 85년 빙그레（현 한화） 창단감독, MBC 감독 등을 맡는 동안 입었던 점퍼와 파카를 양어장 직원들이 입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 들기전에 벗어야 했던 옷을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줬지."
입하가 지났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두툼한 거울옷을 입어야 하는 양어장인 만큼 야구 점퍼를 입은 `아저씨, 아줌마'들은 지금도 배씨의 추억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야구장 아닌 양어장을 누비고 있다.
무명의 영남대를 정상에 올릴 만큼 지독한 성격의 배씨는 이제 보통 양어장 주인과는 다른 일을 벌이고 있다.
선린상고 8년선배인 박진원씨（61．LA 한인야구협회장）와 손을 잡고 박테리아 활동 촉진제인 `캐탈리스트'를 미국에서 수입해 보급하고 있는 것.
지난해 전국 양어장이 녹조현상으로 망가질 때 배씨는 캐탈리스트로 그의 양어장을 지켜냈다.
"경험 없이 양어장을 하다가 물 때문에 실패도 많이 했어. 마침 미국에 계신 박선배가 캐탈리스트를 소개해줘 양어장을 일으키게 됐어."
올시즌 야구계에 복귀한 배씨는 현역 감독으로 복귀 제의가 있으면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에 "야구는 인생의 전부지만 환경보호 차원에서 시작한 사업도 중요하다"며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감독관으로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배씨는 틈만 나면 월출산이 물에 비치는 양어장으로 달려가 아직도 찍혀있는 `야구 쉼표'를 즐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