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어] 인도대룩 휩쓴 금단의 사랑
기사입력 1997년 05월 09일 15시 24분
카스트제도의 인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성의 동성애를 그린 영화 `화이어'（Fire）가 수입공개된다.（10일 단성사）
시집와서 15년동안 남편 섬기는 것은 물론 거동 못하는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다 받아내며 살아야 했던 여인 라다（사바나 아즈미）가 영화의 주인공. 가부장적 권위와 질서 안에서 억압되고 침묵하는 인도 여성의 전형적인 캐릭터다.
영화는 라다의 시동생과 결혼한 신부 시타（난디타 다스）가 새식구로 가세하면서 아연 활기를 띤다. 시타는 인도의 전통의상 대신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디스코를 흥겹게 추는 신세대 여성.
라다는 자기주장을 당당히 펴는 동서 시타를 통해 헌신과 굴종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던 라다와 시타가 사랑을 느끼게 되는 시점도 이때다.
엄격한 사회규범 속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두 여성의 동성애는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다가 끝내 발각되고 만다. 그러나 어느덧 둘은 자신들의 독립을 주장하고, 동반가출을 감행한다.
이미 여러편의 영화를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페미니즘 작가답게 여류감독 디파 메흐타 특유의 연출시각이 영화 전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 달 열린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의 뉴커런트부문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상영된 것도 이처럼 인도 여성의 고통어린 삶과 동성애를 그려냈다는 점 때문.
그러나 인도 배우와 감독이 참여한 영화이면서도 정작 제작국은 캐나다라는 사실에서 거대한 인도대륙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