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아버지와 아들 (4)

기사입력 1997년 05월 06일 15시 24분



허원행을 태운 승용차는 강남에 새로 들어선 한 호텔에 도착했고, 그는 저녁식사 약속이 되어있는 일식집으로 들어섰다. 앉아있던 정보제공자가 벌떡 일어나 맞아주었다. 얼굴이 몹시 굳어있었다.

"웬일이오. 그렇게 굳어있게."

"앉으시죠. 이성구씨는 언제 오시죠?"

"왜요. 무슨일 있습니까."

"네. 그분이 오시면 더 정확히 알게될겁니다만 한보그룹 부도처리가 불가피한 모양입니다."

"한보가 또 부도를…."

"네. 제일무역에서 추진 중인 100억 융자 빨리 추진해야 합니다. 한보가 터지면 융자받기 힘들어 지니까요."

"설마…. 지금까지 한보에 투자된 돈이 얼마나 됩니까."

"정확한건 모르지만 대략 5조가 넘는 모양입니다."

"허허허…."

갑자기 허원행이 껄꺼대며 웃기 시작했다.

"한보가 어렵다는건 알지만 5조가 넘게 투자했다면 부도는 못냅니다. 한보가 어떤 회사입니까. 수서사건때 엄청난 로비로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5조씩이나 융자받았다면 이건 특혜가 분명하고 특혜가 있었다면 여－야에 무차별로 로비자금을 살포했을텐데 부도가 가능하겠습니까?"

"하지만 이건 정확한 정보입니다."

"아무리 정확해도 논리가 안맞아요. 5조가 투입된 한보철강이라면 국책사업으로 분류했을텐데 그걸 무너뜨립니까. 정치권 경제권 다 죽어요…. 그런 걱정 마세요."

이때 문이 비죽이 열렸다. 화장내음이 코를 찔렀다. 장혜정이다. 그리고 뒤이어 금융계 황제 이성구가 들어왔다.

"아니…. 두사람이 함께…. 벌써 이렇게 됐나요?" "어허, 오해마세요. 호텔 주차장에서 마주친거 뿐입니다."

하지만 이성구의 표정도 매우 굳어보였다. 역시 같은 정보를 입수한 것이 틀림없는것 같이 보였다.

"이전무님도 같은 정보입니까? 한보."

"네? 벌써 알고계셨나요."

"지금 그얘기 하는 중 입니다. 그럼 그게 사실입니까."

"네. 일주일을 넘기지 못할겁니다. 이미 이쪽 세계에서는 소문이 났습니다. 시중에는 노동법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우니까 이를 돌파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라고도 합니다만 아무튼 한보는 쓰러집니다. 하지만 걱정은 마십시오.

제일무역 차회장의 대출건은 확정되었으니까요. 내일아침 차회장은 기쁜소식을 듣게 될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그까짓 정도로…. 아무튼 늦었더라면 불가능 했을겁니다. 한보가 쓰러지는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대지진이니까요. 은행, 정계가 쑥대밭이 될겁니다.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대선과도 관계가 있는겁니까."

"관계라기보다 태풍이죠. 여당은 9룡중 몇은 확실히 탈락될 것이고 야당은 로비사건으로 궁지에 몰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