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외출허가증 받아 아들경기 관전
기사입력 1997년 04월 27일 15시 00분
김현철이다 한보다 해서 이래저래 살맛 안나는 요즘 15년째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는 고용오씨（46）는 드물게 `사는 낙（樂）'이 있다.
아들 고종수（19．수원 삼성）가 부쩍 커가는 모습을 보는 낙이다.
요즘같은 환절기때면 더욱 숨이 차는 고씨는 의사소견으로는 `외출불가'다.
그러나 고씨의 `사는 낙'은 그가 입원중인 여수 전남병원의 주치의도 막지 못했다.
고씨의 끈질긴 부탁에 올해부터 외출허가증을 끊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축구가 열리는 날 아침 주치의가 끊어준 외출허가증을 들고 부인 김경순씨（44）의 부축을 받으며 여수역으로 향하는 고씨의 마음은 초등학생의 소풍날처럼 설렌다.
남부러울 게 없는 `화려한 외출'이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연신 기침이 나오지만 고씨는 관중들의 시선을 붙들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아들의 모습에 모든 고통을 잊는다.
종수가 골이나 어시스트를 해내는 날이면 그의 어깨는 더욱 으쓱해진다.
지난 26일 전북과의 97라피도컵 개막전이 벌어진 익산 종합운동장에도 고씨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부인 김씨와 함께다.
최근 고씨의 외출에는 동행이 한사람 더 늘었다.
고종수가 `똥배 삼촌'이라고 부르는 고씨의 고향（여수）후배 박채순씨（43）다.
안양에서 사업을 하는 박씨는 수원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수원역에, 익산경기때는 익산역에 자가용을 몰고가 선배인 고씨를 경기장까지 데려다주고 경기후엔 천리길인 여수까지 동행하곤 한다.
고씨의 화려한 외출은 이튿날 새벽에 끝나는 게 보통이다.
하루를 쉬어 가고 싶어도 고종수가 `사춘기'라고 말하는 둘째 아들 종길（고2）이의 아침을 위해선 밤 12시 막차라도 타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찢어지는 가난이 가져다준 고질（痼疾）.
쉽게 치유되기 힘든 병이지만 고씨는 `아들 보는 낙'에 이미 병마와의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