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야구세상] 일본야구는 '팬서비스 천국'
기사입력 1997년 04월 16일 14시 31분
내가 일본에서 배운 것이 있다. 가라오케에서 `노래부르기'와 `야구'다. 10여년 넘게 `술과 장미의 나날'을 보냈지만 나는 술집에서는 노래한 적이 거의 없다.（춤은 많이 추었다） 대개 부서의 명가수들이 밴드에 맞춰 여흥을 자진해서 베풀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 가보니 일단 무조건, 강제로, 반드시 가라오케에 맞춰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곧 엄청난 레퍼토리를 자랑하게 되었다. 야구 역시 그렇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야맹'이었다. 대학시절에 내 친구가 어떤 멍청한 여자의 흉을 보면서 `아무개는 정말 무식해. 야구는 9회말이 끝인 것도 모른다니까'했을때 `어머나 10회가 아니라 야구는 9회말이 끝이구나'하고 새삼 중얼거렸을 정도였다. 물론 친구들 가운데는 남자친구와 함께 뙤약볕에 앉아 소리를 벅벅 질러가면서 야구구경을 열심히 다니는 아이도 있었지만 나와는 영 관계 없는 일로 여기고 있었다. 시간도 없었고 사실 아무리 봐도 영 돌아가는 판을 알 수가 없었다. 축구나 농구처럼 그저 뛰다가 볼을 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일본에 가보니 이것은 완전히 `야구천국'이었다. 야구시즌이 돌아오면 일본 전국이 떠들썩했다. 온 국민이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판이었다.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한신팬', `교진（거인）팬'이니 각기 일상적인 후원사로 나누어 보는 관심사가 오로지 야구에만 집중됐다. 생활과 야구가 완전히 짝자꿍이 되어 있었다. 일본의 야구장은 연예계와 마찬가지로 `시상'이 엄청나게 많다. 야구선수들 역시 몇명의 스타급 선수들이 휩쓰는 한국과 달리 선수들도 많고 그들의 개성과 경기스타일이 온갖 구색을 다 갖추고 있었다. 가령 야구가 9회말이 끝인지도 모르는 아줌마들도 승패에는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 아줌마들이 응원하는 팀은 오로지 `세이부'였다. 세이부가 우승을 하면 세이부 백화점과 슈퍼마켓들이 30％ 세일을 하기 때문에 목이 터지도록 세이부 우승을 외치는 아줌마 부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런 판이니 야구룰을 잘 몰라도 야구가 궁금해졌다. 또 혼자 살다보니 달리 주말에는 할일도 없고 해서 TV 앞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 `야구 길라잡이'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온갖 룰을 알고 야구를 보니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컴퓨터에 처음 입문할 때와 같다고나 할까. 누가 이렇게 편리하고 멋진 것을 만들었나 하는 `감동'과 `감탄'의 심정 이었다. 더구나 어렵게 `독학'을 하다시피 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일본 야구는 미국인들이 `소프트야구'니 `미니야구'니 혹은 `리틀야구'라고 비웃지만 나름대로 잔재미가 담뿍 있다. 순간순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그런 만큼 유달리 팬서비스적 요소가 많다. 마치 일본식 불고기를 입에 넣으면 녹는듯한 `부드럽고 연한 달콤한 맛'이라고나 할까. 한국에 돌아오면서 은근히 일본야구를 못보는 것이 아쉬웠다. 내가 좋아했던 멍청한 오치아이 선수 생각도 가끔은 나겠지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한국야구를 보니 솔직히 훨씬 더 재미있다. 거칠고 잔재미는 덜하지만 한국야구는 파워가 있고 영웅이 있고 스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짜릿하다. 마치 한우고기맛과 같다. 약간 질긴듯 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처럼 한국야구는 깊이가 있다. 페넌트레이스의 개막은 요즘같이 `왜 사나'싶은 상황에 아무 부담없는 기쁨을 던져준다. 도전과 패기와 순수한 열정을 구경할 수 있어서다. 한보 청문회같은 부패와 부정과 부끄러움의 구경거리가 아니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