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암투 (6)

기사입력 1997년 04월 01일 14시 49분


소원대로 정9품의 교위가 된 구광이 맡은 일은 교정도감 소속의 창고 경비장이다.

각 백여칸이 넘는 두동의 창고가 미타산 기슭에 세워져 있었는데,각도에서 올라온 공물 뿐만 아니라 무기들도 보관하는 곳이었다. 왕께 직접 바치는 공물외에는 모두 이곳에 모이는 것이다.

구광은 다시 기세를 찾았다. 장원의 마름에서 교위로 벼락출세를 한데다가 교정별감 김준을 측근에서 모시는 것이다. 역관 황판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창고앞 막사에서 부하들과 같이 생활하게된 때문에 윤의충과 떨어진것이 다소 서운했으나 직속상관이다. 매일 얼굴을 볼수 있었으니 별것 아니었다.

진시무렵. 구광은 막사에 들어섰다. 딱 한가지 흠이 있다면 황판의 장원에서는 실컷 먹을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보리밥 한주먹에 소금에 저린 나물로 매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도 그의 기분은 찌뿌듯 했다. 병사들이 일어섰다.

"교위어른 오십니까?"

병사들은 마악 식사를 하려는 참이었다.

"어서 들어라. 난 먹었다."

구광이 문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의 휘하에는 대정 세명과 삼십명 가까운 병사가 있다.

병사들은 함지박에 담긴 조밥을 각기 바가지에 떠넣고는 허기진듯 퍼 넣었다. 조와 보리가 반씩 섞인 잡곡밥이었고 반찬은 소금에 저린 나물로 그의 식사와 별로 다를것이 없다.

"동막사에서는 어젯밤에 도야지를 잡았다던데."

그저 씹고 달가닥거리는 젓가락 소리만 울리던 막사안에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가 그쳤다.

구광이 머리를 들었으나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병사는 없었다. 동막사는 동편에 있는 막사로 그쪽에도 교위 하나에 병사 삼십명이 있다.

자리에서 일어선 구광이 마악 수저를 내려놓는 대정을 손짓으로 불렀다.

대정이 재빠르게 따라 나섰다. 대정은 30대 중반쯤으로 마른 체격의 사내였다.

교정도감의 창고 수직을 맡은지 반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막사 밖의 돌담가에서 마주보고 섰다.

"도야지를 먹었다니 무슨 소리여?"

그가 묻자 대정이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시선은 떨구지 않는다.

"박교위가 얻어온것 같습니다."

"어디서 말이여?"

돼지 한마리는 쌀 다섯섬 값이다. 교위신분으로 얻거나 사기가 힘든 귀물(貴物)인 것이다.

대정이 한걸음 다가와 섰다. 두눈의 동자가 쉴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끔 장군들께서 창고를 여실때 쌀몇섬씩을 떼어 주시지요."

"…."

"어제는 우부승선(右副承宣)께서 동쪽 창고를 여셨습니다."

동쪽 창고는 동막사의 박교위가 맡고 있다. 구광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우부승선이 뉘기여?"

"예. 시중대감의 자제분입지요."

"…."

"아주 손이 크신 분이십니다. 지난달에는 이쪽 서쪽 창고를 여셨다가 우리에게 비단 한필을 주셨소이다."

"…."

"우린 그것으로 쌀과 고기를 바꿔 사흘을 먹었습지요."

"장부시구만."

감동한 구광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이자 대정이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