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내부의 적 (8)
기사입력 1997년 03월 19일 13시 27분
떠버리와 무쇠가 털보파에 합류하자 다른 파의 사자들은 긴장했다. 특히 조직원이 하나씩 줄어든 신진파와 백골파는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수적으로 변화가 없는 해골파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때나마 사파리를 장악했던 빠삐용의 후배들이 모인 털보파와 골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었다. 해골파 보스였던 용팔이가 빠삐용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당시 서열 3위였던 천하는 빠삐용의 생식기를 물어 쓰러뜨린 공로로 부두목으로 뛰어올랐었다. 빠삐용의 후배인 떠버리와 무쇠, 설악이 그런 천하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것은 정한 이치였다. 떠버리가 복귀한 92년 초겨울, 사파리엔 찬바람이 몰아쳤다. 이름만큼이나 떠들썩한 떠버리는 사파리에 들어서자 나무에 몸을 비비며 요란하게 기지개를 켰다. 8개월만에 밟아보는 사파리의 흙과 나무에 조금은 흥분한 듯했다. 아파트 골방에 갇혀 있는 동안 간이방사장에서 잠깐씩 운동하며 햇볕을 쬐는 것이 하루 일과였던 떠버리로서는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감이었다. 게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왕권을 노릴 기회를 맞았다는 기대감에 온몸이 짜릿하기도 했다. 호랑이와 합사 때 나이 제한에 걸려 연금을 당했던 떠버리는 왕위 다툼에 한창인 포철이나 천하보다 두살이 많은만큼 덩치도 더 컸다. 아파트에 있으면서 사파리로 출퇴근하는 사자들이 자신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알아챈 떠버리는 언젠가 복귀만 한다면 사파리의 왕을 노리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떠버리는 무쇠와 설악이 믿음직스런 눈으로 지켜보는 것을 느끼며 몸을 풀었다. 털보파로서는 유일하게 사파리에 나가있던 막내 설악의 보고를 통해 사자 공화국의 돌아가는 사정을 안 떠버리는 첫번째 공격 상대로 해골파 천하를 꼽았다. 빠삐용에 대한 복수도 급했지만 무엇보다도 최강 포철을 치기 위한 예행 연습으로 2인자 천하가 알맞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목끼리의 맞대결이 아닌 패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포철 말고도 인철, 강철이 있는 신진파보다는 비교적 약한 한라와 백두가 있는 해골파가 상대적으로 만만해보였다. 떠버리는 천하를 찾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늦게 떠오른 아침 햇살에 떠버리의 발달한 어깨 근육이 눈부시게 빛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