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두뇌전쟁 (11)

기사입력 1997년 03월 18일 15시 11분

식당과 대폿집을 겸한 이곳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벌써 소주병 7개가 바닥이 났다. 앞자리도 뒷자리도 대권전쟁과 바닥나기 시작한 경제문제가 안주거리였다. 명예퇴직을 당한 듯한 40대 남자의 깊은 한숨 소리도 들려왔고, 어디선가는 금융실명제의 대안 없는 결정 때문이라며 침을 튀기기도 했다. 정치권에 대한 냉소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나라가 온통 정치와 경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국민들은 일선 정치인 못지 않는 정치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논리 또한 정연했다. 대부분의 여론이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이었으며, 도대체 어떻게 정치를 하기에 일손과 자리가 없어 애태우던 기업에 `명예퇴직'이 뭐냐며 흥분하기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 안주감은 다시 대통령으로 모이고 있었다. 정치가나 대통령 후보감들은 언제나 이렇게 서민들 술상에 안주로 오르내렸고, 이런 대화는 곧 `국민여론'의 근간이 되고 있었다. 3당 수뇌부들은 이런 `민심(民心)'의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최종결심은 그들의 독자적 판단에 따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와 행정부 최고의 경제팀들은 말 못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한보그룹'의 총회장 때문이다. 이미 지난 여름 부실기업으로 종결이 난 한보철강에 아직도 천문학적 숫자의 융자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도처리'가 시간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무슨 압력인지, 누구의 입김인지 대출은 쉬지 않고 있었다. 주거래 은행인 을 비롯한 몇몇 은행은 이미 공포에 질려 버린지 오래되었다. 잘못하면 나라가 뒤집힐 6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흘러갔는데도 `한보'는 전혀 미래를 내다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술병이 한창 쌓이고 있을 때 50대 남자가 불쑥 찾아왔다. "아니?… 사장님." 사내들이 깜짝놀라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회사에 남아있을 사장님이 직원들의 단골식당인 이 집으로 불쑥 찾아온 것이다. "앉아. 앉으라고. 오늘 내가 한잔 사고 싶어서." 지방에 작은 공장 하나를 경영하는 회사 사장이다. 벌써 석달째 자금을 돌리지 못해 애태우면서도 가까스로 이달 급료를 맞춰 주었다. "화이팅！" 다시 술잔을 높였다. 그리고 힘찬 구호를 외치지만 힘이 없다. 회사 사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사장님. 고생 너무 많으십니다." "걱정하지마. 곧 대출될 돈이 있으니까. 이 고비만 넘기면 돼. 자네들 사기 올려 주려고 찾아온 거야. 저녁값 내가 낼테니 그리 알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