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본능과 본능 (6)
기사입력 1997년 03월 09일 15시 13분
호랑이들에게 둘러싸인 천하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딛고 사자공화국 2인자답게 호식이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호걸을 비롯한 호랑이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호식은 천하의 적이 되지 못했다. 앞가슴을 물린 호식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역전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었다. 호식의 형 호구가 참지 못하고 뛰어나가 천하를 밀쳐내며 뒤에서 목덜미를 물었다. 호랑이 생태상 사자와의 싸움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호랑이는 자기들끼리 싸움은 물론 장난을 하다가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리면 곁에서 구경하던 다른 호랑이들이 달려들어 불리한 놈을 집단구타한다. 약한 호랑이를 아예 도태시키는 타고난 습성이다. 호걸이 친동생 호식이 당하는 것을 지켜본 것도 바로 이같은 까닭이다. 호구가 지원사격을 하자 다른 호랑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천하에게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다. 천하는 특히 암호랑이 유리와 살림을 차리고 임신까지 시킨 `죄'가 있어 호랑이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상태였다. 패트롤카가 호랑이들을 떼어놓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천하는 겨우 일어나 병원에 실려갔다. 사자공화국에서 1,2위를 다투는 포철과 천하가 호랑이들의 집단공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자 나머지 사자들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호랑이들이 폭동을 일으키기 전처럼 이번에는 사자들이 사파리 구석에 숨어지내며 호랑이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 사파리는 이제 완전히 호랑이 세상이 된 것이다. 결코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 성질을 타고난 호랑이들이 암컷을 사자들에게 빼앗긴 데 대한 분노가 본능을 바꿔놓은 덕분이다. 그러나 타고난 본능은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자들의 공격 위험성이 사라지자 호랑이들은 다시 예전처럼 `개인주의'로 돌아갔다. 호걸은 모처럼 되찾은 평화를 즐기기라도 하듯 따사로운 초여름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 밑에 누웠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여유였다. 바로 그때 이런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애첩 명랑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