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쉬페이션트] 죽음보다 강한 사랑합니다
기사입력 1997년 03월 05일 14시 32분
오는 24일 열리는 시상식에서 가장 유력한 작품상 수상작으로 지목되는 영화가 `잉글리쉬 페이션트'(English Patient)다. `잉글리쉬…'는 오랜만에 `대 러브로망'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좋은 영화. 광활한 사하라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녀의 격정적인 사랑과 죽음, 이를 장엄한 스케일로 담아낸 영상 등은 과거의 `닥터 지바고'나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과 같은 대서사드라마의 감동을 안겨준다. 사랑은 언제나 그랬듯이 거칠 것이 없다. 비록 불륜으로 재단되더라도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은 미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비극미'를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무렵인 북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 온몸의 화상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영국인 환자'가 간호사 한나(줄리엣 비노시)에게 가물거리는 기억을 회고하기 시작한다. 환자의 이름은 알마시(랄프 피네스). 의 백작 출신인 알마시는 국제 지리학회 회원으로 사하라 사막의 탐사 도중 경비행기를 좋아하는 영국인 클리프튼 부부와 만나게 된다. 알마시는 클리프튼의 부인 캐서린(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을 처음 본 순간 마법에 걸린 듯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캐서린도 알마시의 뜨거운 눈빛과 매력을 거부하지 못한다. 사막탐사 도중 고립된 알마시와 캐서린. 작열하는 태양과 순식간에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모래폭풍 속에서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든다. 두 사람의 사랑은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거침없이 사랑의 행위에 몰두하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관계를 눈치챈 클리프튼은 분노한 나머지 캐서린을 경비행기에 태운 채 알마시를 향해 사막으로 돌진한다. 경비행기의 추락으로 클리프튼은 죽고, 캐서린은 온몸이 부서지는 골절상을 입는다. 동굴로 옮겨진 캐서린으로부터 "나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요"라는 고백을 듣고, 알마시는 "결코 당신 곁은 떠나지 않겠소"를 다짐하며 오열한다. 알마시의 회고와 현실을 넘나드는 연결고리는 한나. 한나는 인도인 폭탄전문가 킵(나빈 앤드루)과 순수한 사랑을 나눈다. 알마시의 사랑과 한나의 사랑은 시간을 달리한 채 아름다운 그림으로, 때로는 절망적인 얼굴로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신비감을 더해주는 의 민속음악도 대서사시의 밑그림.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의 음악으로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의 사랑이 피어났듯이 `잉글리쉬…'에서는 의 민속음악으로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이 일궈지고 있다. 캐서린의 시신을 태운채 음영이 드리워진 사막 위를 비행하는 알마시, 우울한 눈빛의 한나를 도르래에 태워 성당의 천장벽화를 보게 하는 킵. 절망도 희망도 삶의 한 자락이라는 것을 안소니 밍겔라 감독은 화면으로 강변한다. 빼어난 몸매는 아니지만 아름답게 드러낸 전라의 열연 등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은근한 관능미도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