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일기] 서승만 (12)
기사입력 1997년 02월 16일 14시 47분
나한테도 슬럼프란 게 있었다. 개그맨이 된 이후 내 마음 속엔 드라마 연기자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는데 드라마 연기는 그저 작가가 써주는 대본만을 달달 외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순간 순간의 상황 애드리브가 중요한 개그와는 처음부터 수준을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93년 신인상을 받고 한창 주가를 올리던 중 `태평천하'라는 시트콤의 주인공 황대평 역을 맡았다. 처음엔 내 대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대사가 준다는 건 곧 막을 내릴 때가 됐다는 징조인데 예상대로 금방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연극이나 마임을 해본 적이 없는 난 무엇보다 감정표현이 되질 않아 애를 먹었다. 조금만 표정을 내면 오버액션이 돼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그러다보니 더욱 위축이 돼 자신감을 잃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라는 놈은 탤런트는 못하고 죽도록 개그맨만 해야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두서없이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마무리를 해야할 때가 된 것같다. `영원한 조연'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연기자들은 누구도 그 말을 스스로에게 맞추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표현자체를 거부한다. 정식으로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방송을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지만 지금껏 한번도 정상을 밟아본 적이 없다. 늘 한단계 아래에 머물며 정상을 지켜주는 보조자 역할을 주로 맡았다. 밤무대와 대학가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도 유독 방송에서만은 뜻대로 되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난 현재의 내 위치에 정말 만족한다. `넘지 못할 주연 보단 빛나는 조연이 더욱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