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돈의야구보기] 천보성 감독의 권위-형식 파괴
기사입력 1997년 02월 10일 16시 50분
`형식파괴' `학력파괴' `서열파괴' `연봉파괴' `가격파괴'. 우리사회에 휘몰아친 파괴의 물결은 상당히 신선했다. 능력 위주의 재구성을 위해 만들어진 파괴 열풍은 우리사회를 강타하고도 남을 `파괴력'이 있었다. 상품에 대한 가격파괴는 소비자를 상당히 즐겁게 하기도 했다. 프로야구도 파괴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움직임이다. 그것은 올해 감독으로 데뷔하는 LG 천보성감독이 권위와 형식을 파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야구 감독들은 신성불가침 존재로 무한능력을 가진 슈퍼맨으로 인식돼 왔고 또 그렇게 행동해왔다. 감독들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가에 대한 예는 수없이 많다. 특정선수를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살핀 코치들의 의견을 아예 무시하고 선수기용을 독단적으로 하는 감독. 감독이 됐다고 야구선배에게도 반말을 하고 코치나 선수들에게 육두문자를 쓰는 감독. 식사도 따로 하고 코치들과 야구 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는 감독. 투수나 선수 교체시 벤치에서 나오지 않고 나오더라도 느릿느릿 거들먹거리는 감독. 구단이 지급하는 판공비를 월급의 일부로 생각하는 감독. 명령과 복종에만 익숙해온 선수들도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강요에 의한 훈련과 경기를 계속해 왔다. 90년대들어 `자율'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야구판에 생겨난 것도 그릇된 감독의 권위주의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야구판에 뛰어든 천감독의 행동은 상당히 파괴적이다. LA 다저스에서 2년간 연수를 한 천감독은 모든 코치들이나 트레이너 매니저에게도 경어를 사용한다. 코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밤을 꼬박 새워 대화를 하며 유용한 정보나 좋은 표현이 있으면 포스터처럼 선수단 라커룸에 붙여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도 있다. 작년 감독대행 기간동안 투수교체를 직접하고 반드시 마운드로 뛰어가는 원칙을 지킨 천감독이 파괴를 한 곳은 또 있다. 선수들과 목욕도 같이하고 훈련시 같이 뛰는 것이 바로 그것. 감독이 선수와 목욕을 하는 것은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고 훈련때도 팔짱끼고 지켜보기만 했던 감독과는 전혀 다른 변신이다. 150만원의 판공비에다 자신의 용돈까지 합해 선수들과 식사 등을 하며 애로사항을 듣기도 하는 천감독의 행동중 최고의 파괴는 뭐니뭐니해도 감독실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점이다. 누구라도 방문하면 이야기를 나누고 또 유익한 말이 나오면 메모했다가 실천에 옮기는 `열린 생각'의 교두보로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이 갖추어야 할 리더십은 지배도 복종도 아니다.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통제나 권리를 행하는 것과도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물론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권위를 갖추어야 하고 권위가 감독에게 가장 큰 덕목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친근하면서도 리더십이 있어 존경 받는 감독이 `21세기형 감독상'이 아닐까.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LG에 고용된 사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천감독의 `파괴'가 올시즌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궁금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