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이트] 1천원의 비애
기사입력 1997년 02월 03일 15시 22분
1997년 겨울. 이 나라엔 온통 폭설경보가 내려져 있다. 영동 지방엔 폭설(暴雪)이 내려 사람과 자동차가 줄곧 설설 기어야 했고, 대치동(한보가 있는 동네)쪽에도 폭설(暴雪)이 내려져 있는데 누가 돈을 얼마 먹고 누군 얼마를 먹고…. 설이 가까워져선지 설(說)이 끊이지 않아 역시 사람들 가슴이 설설 끓을 지경이다.
사람이 돈을 잘 먹는 걸 보고 난 여기서 우리 한국인은 특히 만물의 영장 중에서도 영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은가. 염소가 간혹 종이를 먹긴 하는 데 한국인은 특수 위장이어선지 일반 종이보다 훨씬 질긴 지폐를 잘도 먹어대니까. 신경질이 북북 나는 건, 우리가 어렵사리 한푼 두푼 은행에 맡긴 걸 빼내 즈이들끼리 마구 그것도 50원이나 500원 아니 5만원정도가 아닌 뭐 5조인지 오우 조오∼！인지 하는 돈을 주물럭고기 주무르 듯했다는 것이다. 우리 서민들은 단돈 1천원이라도 어떻게 쓰는지 얘기해 줄까. 그의 출소 기념으로 같은 동의 동료들은 회람을 돌렸다. 일금 1천원씩을 걷으면 그가 10년만에 나가 보는 세상에서 그 동안 억눌러야 했던 욕망을 풀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드디어 그가 높고 육중한 철문을 나서게 됐는데 그의 손에는 자신의 비상금 천원과 동료들이 모아 준 천원짜리 수십장이 든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는 동료들의 간절한 소망(?)대로 그 돈을 들고 `구멍가게'가 운집해 있는 `영자네 동네'(어려운 말로는 사창가라고도 한다)로 갔다. 흥정은 쉽게 이뤄지고 그 일도 즐겁게 치를 수 있었다. 그는 영자에게 봉투를 내밀며 돈을 얻기까지의 사연을 좌악 얘기했다. 그런데 영자는 "너무 감동적이에요. 당신의 돈을 차마 받을 수 없네요"하며 돈이 든 봉투를 다시 찔러 주지 않는가. 그는 기운을 회복한 뒤에 붉은 불이 켜진 다른 집으로 또 갔다. 거기서도 일을 마친 뒤에 다른 `영자'에게 돈을 모은 사연을 낱낱이 말하고 봉투를 내밀었다. 이 여자는 어떻게 감동을 할까…. 그러나 상황이 아까와는 영 딴판이었다. 그 집의 영자 "야, 새캬！ 니가 십년 모은 돈이 겨우 천원이냐！ 이 게 억과 조가 춤을 추는 세상에서 돈 천원 갖고 뭘 하려고 들어！" 앞집의 영자가 돌려 준 돈은 오직 그의 돈 `1천원'뿐이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