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빗나간 야망
기사입력 1997년 01월 29일 16시 18분
날고 싶은 욕망에 밀랍으로 된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던 그리스 신화속의 이카루스처럼 자신의 야망을 위해 영혼까지 팔아야 했던 남자. 그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가 `불새'(김영빈감독－선익필름제작)다.
`불새'는 강렬한 캐릭터와 극적인 이야기구조 때문에 이미 79년엔 영화로, 87년에는 TV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원작의 작품.
`불새'를 구축하는 인물은 4명이다. 불우한 과거를 숨긴 채 욕망의 실현을 꿈꾸는 영후(), 비열한 방법으로 적자생존의 법칙을 터득한 재벌2세지만 로맨티스트인 민섭(), 민섭의 이복여동생으로
영후를 향한 사랑에 집착하는 미란(), 민섭의 약혼자이지만 영후의 순수한 영혼에 이끌려 방황하는 현주(김지연).
97년판 `불새'는 이들 네 등장인물의 사랑과 야망을 축으로 삼고는 있으나 철저하게 영후의 `야망 꿈꾸기'와 비극적인 파멸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점이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나 TV드라마와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 요인이다.
`김의 전쟁' `테러리스트' `나에게 오라' 등 김영빈감독이 줄곧 천착해온 `남자연구'라고나 할까. `불새'에서는 영후란 인물, 특히 영후역을 맡은 의 분석에 연출의 무게를 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니, 의 독무대다. `모래시계'이후 아이들스타로 떠오른 는 `젊은 남자'에 이어 `불새'를 통해서 비로소 비상의 날개를 활짝 폈다.
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며, 잘 모르던 사람이라도 저절로 에게 흠뻑 빠지고 말 정도다. 도 김감독의 편집증적인 기대에 부응한다.
양복을 입은 채로 분수에 뛰어들어 가만히 누워있는 모습이라든가 `모래시계'를 능가하는 액션 연기 등은 ` 신드롬'을 실감나게 하는 장면들.
에서의 인연으로 민섭과 친구가 되고난 뒤, 영후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을 만난다. 이중에서도 자신의 야망을 이뤄줄 미란과 순수한 사랑의 현주를 만난 것은 최대 수확. 영후는 야망을 선택할 것인가,
사랑을 택할 것인가.
프랑스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들롱을 연상케 하는 의 열연이다. 물론 의 열연에는 의 또다른 악역 희생이 뒷바침됐기에 가능했다. `청춘스타 '을 접고, 영화 전체의 하모니와
긴장감을 끌어낸 `성숙의 아름다움'이다.
액션영화 연출에 솜씨를 보여온 김감독은 멜로감성을 지켜온 라스트 5분여에 걸쳐 화려한 `액션'을 선물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2월1일 명보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