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 기억되는 배우 되고 싶어요 ♣

기사입력 1997년 01월 21일 15시 52분


"어 새아가씨가 왔는 개비여?" "미쓰,뭐여?" 사북도 훨씬 지나쳐야 나오는 탄광촌 고한. 고살 모퉁이에서 짓궃은 몇몇 광부들이 지나치는 날씬한 아가씨에게 수작을 건다. '쌤삥 아가씨가 다방에 새로 부임한 것'이라고 지레짐작들을 한다. "아가씨 잘해 보더라고.언제 데이트 한번 해야 할거 아녀?" 그러나 아가씨는 그냥 씨익 웃고 길을 줄인다. 영화배우 심혜진(본명 沈海眞 30) 그에게 낭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 감독) 그 촬영현장에서 일어난 삽화였다. "촬영장 주변은 더없이 삭막했다. 광부막사도,산도,냇가도,그리고 하늘까지 온통 새카맣게 보엿다. 찻잔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왔가갔다하는 장면을 찍었는데,멋모르는 광부들이 보고 '다방아가씨'가 새로 왔다면서 반색을 했다. 에게 있어 탄광촌은 충격이었다.'연탄 한장'이 새삼스러웠다. 세상엔 참,어느것 하나 쉬운게 없었다. "그들도..."는 탄광촌 삽화다. 세겹하늘아래 사는 막장인생 흔히들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산다는 '막다른 인생' 이라는 자조가 피어나는 그런 곳이었다. 2개월여 고한에 있으면서 '막장인생'에 무한한 애정이 일었다" 심혜진 지난해는 근사했다.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김태균 감독)의 박봉곤역으로 청룡영화상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박봉곤은 가출녀.밤무대 3류가수가 되지만 '자기식대로 사는 데'에 만족하는 좀은 멍한 여자. 은 올해도 지난 해의 '방방뜨는 운세'를 숨가쁘게 몰아치고 있다.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선우완 갑독)에 마리아역으로 캐스팅됐다. '마리아...'는 여름날 여인숙이 무대.인간의 탐욕과 애증을 묘사한 리얼리즘 영화. 마리아는 여인숙의 비밀을 쫓아 복수의 게임에 뛰어 들면서 시작된다. 심혜진. 어정쩡한 것은 따악 질색이다. 딱 부러진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대체적으로 남의 일엔 무관심하다. 냉정하고 쌀쌀맞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에로의 관심은 무한대. 애교만. 분위기도 잘맞춘다. 차가워 보이는 표정탓에 손해도 많이 본다. 그러나 직접 만나면 수더분하기 그지 없다. 심혜진 서울 태생. 공덕초등학교-서울여중-보성여고 졸업. 1m69 51kg. 아버지는 사업가. 큰부자는 아니지만 고만고만하게 사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고교 졸업후 대학입시에 실패. 재수생때 그눔의 공부가 웬수였다. '가방끈 길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이판에 두살 위의 언니 명군은 살갈 혜진에게 바람을 넣었다. "얘,재수생활 힘들잖니? 따분하지?바람쐬는 셈치고 모델이나 한번 해볼래?" 명군은 실상 혜진보다 미인으론 한 수위. 서울예전 응용미술과에 재학중이었는데 사진 모델이기도 했다. 명군이 구세주같았다. 연습삼아 농협신문 광고모델로 나갔다.뒤늦게 이 사실을 안 집안에선 난리가 났다.명군이까지 혼쭐이 났다. 아버지는 더욱 길길이 뛰었다. '입시준비하랬더니,무슨 놈의 모델이냐?너 대학 안갈래?" 혜진은 아버지에게 눈물로 하소연했다. "아버지 전 사실 공부엔소질이 별론가 봐요. 차라리 제가 좋아하는 모델이나 영화배우가 되는게..."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 세월이 약이다. 얼마후 CF로 모델이 된다. 2년후 은 영화 '추억의 이름으로'의 조연으로 출연 데뷔한다.스물 셋. "처음 얼마동안은 배우가 뭔지 도통 이해가 안갔다. 감독이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울었다.로봇이었다.배우는 무지개나 신기루일뿐이었다." 두번째 영화는 '물의 나라'. 유영진 감독과는 데뷔에 이어 2번째 인연이었다."이때 벗는 신이 잇었다. 지금도 그렇만 그때는 벗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가 엄청났다. 배우니까'벗는 신'도 할 수 있다고 맘을 다독거렸지만... 상반신을 벗는 것만으로도 강간당하는 기분이었다." 영화배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목을 죄었다.게다가 몇몇 출연 교섭 영화마저도 에로틱한 것 뿐이었다. "배우고 뭐고 때려치려 했다.그러나 한편 이대로 그만 둘 수 없다는 진한 미련이 잇었다. 미련은 오기가되고...'기억되는 배우'가 단 한번만이라도 되고 싶었다.그러던 차에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은 에게 '영화배우의 자긍심'을 회복시켜줬다. 심혜진 뼈저힌린 슬픔도 좌절도 모르고 살았다. 철부지로 마음 내키는대로 걸어왔다. 그런 그도 딱한번 슬픔의 강물이 회오리쳤다.그것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94년 4월 57세로 삶을 마감한 어머니는 지금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심혜진. 지금은 미혼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면 지금이라도 결혼하겠다." '쫀쫀한 남자'는 '오 노!'다. 설명적인 남자도 역시 '노!'다. 편안한 남자가 좋다. 인물 뜯어먹고 사는 건 아니지만 같은 값이면 스마트한게..." 사람은 누구나 배우다. 삶과 영화가 차이가 없을 순 없다. 그러나 때론 영화는 삶이되고 삶은 영화가 된다. 이제 관객들은 지쳤다. '죽은 영화'에'. 관객들은 바란다. '살아 펄펄뛰는 영화'를. 도 '살아 펄펄 뛰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은 아직 갈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