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일기] 정홍채 (12)
기사입력 1997년 01월 13일 16시 12분
`장길산을 맡게 되다니….' 로부터 만나자는 얘기도 듣지 않았지만 주위에서 하도 바람을 넣고 처음 말을 꺼낸 선배가 원작자인 황석영씨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손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통에 나는 정말 될 줄 믿었다. `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뭐라도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스스로 탈춤과 판소리, 고전무용,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왜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도 있고 `유비무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통보가 올 그날에 대비해 부지런히 몸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결과는 최악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드라마 `장길산'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품은 기획단계에서 취소됐기 때문에. 한참 애쓰다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돼 버렸으니 주위사람 보기도 창피하고 기분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허탈했다. 그러나 그때 배워놓았던 것들이 지금 `임꺽정'에 출연하면서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나의 첫 방송입성은 이렇게 좌절됐고 그뒤 `임꺽정'으로 데뷔하기까지는 5년여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장길산'에서 쓰라린 좌절을 맛봤지만 이후에도 나는 꾸준히 방송가를 노크했다. 물론 연극무대도 좋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널리 인정받고 싶은 심리는 있는 것 아닌가. 어려운 경제사정도 여의도를 기웃거리는데 한몫했다는 사실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나는 `토지'에서 주인공에 응모했다가 최종 3차에서 떨어진 것을 비롯해 수차례 탤런트 공채시험에서 죄다 떨어졌다. 90년대초까지 탤런트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나는 `방송하고는 인연이 없구나'하고 깨끗이 포기해 버렸다. ◇90년초로 기억한다. 뮤지컬 `우리는 새우젓이오' 연습 도중 동료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