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9화> 대륙의 기인들 ⑧

기사입력 1996년 08월 22일 14시 48분


**"왕녀께서 날 구해주셨지요"


아비라는 사슴의 목이 박제되어 있는 한 별실에서 심한 중상을 입고 있는 오고타와 추월야접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치료를 끝낸 듯 침상에 나란히 누워 아비라를 맞이했다. 오고타, 즉 청죽생은 간신히 입을 벌렸다.



"면목이 없사옵니다."



아비라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답지 않게 자상한 웃음.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요."



"황송할 뿐이옵니다."



아비라의 시선이 추월야접에게로 향했다.



"이 분은…?"



청죽생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추월야접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를 찾아가기 위해 왔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아비라. 추월야접은 계속 말했다.



"우린 오래전부터 부부(夫婦)의 연을 맺고 지냈사옵니다. 너무도 어울리는 한쌍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인가 갑자기 그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당연히 난 강호천지를 유랑하며 이 사람의 행방을 수소문 했습니다."



왕녀 아비라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랬군요. 내가 오고타를 구해준 것이 벌써 아득히 오래 전이죠.

당시의 그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어요. 얼굴은 물론이고 온 전신에 칼자국이었죠. 그는 도저히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어요."



청죽생이 괴로운 듯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당시에 어린나이의 왕녀께서는 부왕을 졸라 날 구해주셨지요."



아비라는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하지만 본궁에 머물던 의귀취선이라 불리던 기의(奇醫)가 아니었다면 청죽생의 생사(生死)는 보장할 수 없었어요."



추월야접은 해연히 놀란다.



"의귀취선은 의술의 경지가 신선에 도달했다는 주술(呪術)의 대가(大家)? 성격이 종잡을 수 없도록 괴팍한 기인으로 강호인들이 경외(敬畏)하는 인물이라고 알고 있거늘."



"그가 부왕의 청으로 오고타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제 추월야접은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



"당신…을 그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요?"



청죽생은 괴로운 듯 눈을 내리 감았다. 아랫입술을 피가 터지도록 이빨로 짓누르는 청죽생.



"그는 동영(東븀)의 무사였소."



아비라 왕녀도 처음 듣는 고백인 듯 아미를 찌푸렸다. 추월야접이 재촉했다.



"이름은?"



"모르오."



"이유는 알고 있나요?"



"당시의 나도 혈기가 왕성한 청년이었소. 난 그와 상대할 충분한 자신이 있었소.

그의 도법(刀法)은 내가 목격한 바로는 최강이었소.

무적도 사원의 도법이 정평이 나있지만 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소. 그와의 일전으로 난 모든걸 잃게 됐소. 코가 잘려 나가고 턱이 떨어졌으며 사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잃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