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54)
기사입력 1996년 07월 30일 16시 14분
===== 방송국은 울지 않는다(4) ====. 드라마 `사랑이 들린다'는 히트했다. 여러가지 히트요인이 있었지만역시 최고 이유는 화제성이었다. 첫회에 벌어졌던 충격적인 사건이 일반에게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들였다.
최근 잘나가는 여배우가 뺨맞고 울면서까지 연기를 하는 드라마다. 그것도 때린 장본인이 PD이고 그이유가 눈물을 위한 감정유발에 있었다는 건 모두에게 쇼크였다. 잘 알다시피 시리즈물의 승부는 첫회이다. 첫회가 좋으면 끝도좋다는게 시청률의 속성. 즉, `사랑이 들린다'는 윤지희가 귀싸대기 맞고 펑펑 울었다는 신문잡지 기사가 도화선이 되어 폭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귀신잡는 AD 장현표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로 계획대로 됐다. 그는 학교 선배이자 `사랑이 들린다'의 연출인 이형걸PD와 축하주를 마신 뒤 아파트로 돌아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윤지희 고맙다.
너한테 빚진걸로 해두지.
뭐 하긴, 옛날 일을생각하면 넌 아직도 나한테 귀싸대기 한대쯤 더 맞아야 되겠지만 말이야...". "현표 오빠, 많이 물들었군.
능수능란하게 이런 일을 꾸며서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고... 옛날엔 그렇게 순진무구하던 소년이...". "어차피 드라마라는 건 다 픽션이다.
다꾸미는 거라구. 주인공이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꾸며낸 이야기야. 윤지희귀싸대기 맞는 이야기쯤 꾸몄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크게 해가 될 것 없어. 기자들 입장에선 어차피 좋은 기사 건진거고 시청자 입장에선 화젯거리가 되니깐 심심하지 않아서 좋고 방송국은 시청률 올라 가니깐 좋고...". "현표오빠 무서운 사람이야. 몰랐어. 그렇게 변했을 줄...". "내가 무서운게 아니라 방송국이 날 그렇게 만들었어. 방송국 시청률이란게 날 이렇게 훈련시켰다고". "어쨌든 히트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난 덕분에 CF가 두개들어왔어. 시간봐서 한번 조촐하게 대접하지". "건방 떨지마. 너한테 얻어 먹으려고 그랬으면 옛날에 벌써 찾아가서아는 체 했다. 우리 피차 되도록 모른채 하고 지내자구. 그 편이 마음편하니까". "오빠 한가지만 물어볼게... 날 아직 좋아해. 우리 처음 만날 때처럼?". 윤지희의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않고 끊었다. 그리곤 수화기에 대고소리치듯 외쳤다. "윤지희 이시끼야! 너 어떻게 그따위 질문을 할 수 있니.
난 나보다도 널 더 사랑했단 말이야!". 만약 그 사건만 없었다면 아마도 두 사람은 지금쯤 틀림없이 한 침대를 쓰며 쌀값과 아기 기저귀값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사이가 되어 있었을것이다. 수화기를 들고 있으려니깐 9년전 그 사건이 악몽이 되살아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