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46)
기사입력 1996년 07월 22일 14시 30분
==== 아름답고 따스한 사랑(8) =====.
대구에서 그녀가 기차를 타지 않았다는 얘기는 모든게 날샜다는 얘기다.
자기 옆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뱀같은 사내도 어디선가 내린 모양인지, 딴 좌석에 앉았는지 존재가 없다. 밤 열차안의 사람들은 이미 피곤에 겨워 스러져 잠든지 오래다.
이젠 그녀가 올 확률이 없다고 생각하자 일시에 몸이 노곤해진다. 그는 비어 있는 옆자리를 보면서 입맛을 쩍쩍 다셨다. 제기랄 내가 어쩌다 이 어린애 장난감 같은 러브 게임에 말려들었나. 후회막급이다.
오늘 이 기차를 안탔으면 즐겁고 맛있는 토요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친구들과 정기전을 벌이며 스릴을 음뻑 마실 수 있는 모처럼의 주말이었다. 오랜 포커 게임 멤버들이 있다. 고교동창생들인 이 멤버들은 모두 대기업에 취직해 있는데 말발이 악어이빨보다 세고 여자에 관한 한 행동력이 끝나는 녀석들이다.
한달에 한번 저녁부터 만나 포커로 뭉치는 이 팀은 여기에 쏟아진 판돈을 모두 모아 노는데 쓴다.
결국 누군가가 다 판돈을 쌀쓸이하면 그 친구가 가자는 대로 모두가 따라가 논다. 대개는 근사한 여자들의 숨결을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는 나이트클럽 일때가 많다.
이상하게 여자들은 선생인 그를 호기심있게 대했다. "어머! 선생님들도 이런데 오세요?"하는 의아심과 함께 그녀들은 꽁지머리 스타일이었던 그의 모습에 귀여워 죽겠다며 눈웃음을 쳐댔다. 어떤 때는 친구녀석들이 단체로 꼬셔온 파트너들 중에서도 당첨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뭐 훈장이 더 밝힌다니깐"하며 어쩌구 저쩌구하며 씹어대는 놈들을 뒤로 하고 여자의 팔짱을 낀 채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까지 후회없이 지냈던 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그녀를 만났다. 금발 머리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의외로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부끄러우세요? 의외입니다".
그는 호텔 룸 샤워실에서 나오며 자신의 드러나 가슴을 어설프게 수건으로 가렸다. 이크, 큰일 날뻔 했군. 만약 바지까지 벗고 나왔다면 멕라이언은 뒤로 넘어가 뇌진탕사고를 일으켰을 것이다. 샤워하고 T셔츠만을 벗은 채 나왔다고 저렇게 두손으로 눈을 가릴 정도로 어쩔줄 모른다면...
"제가 금발하고 다닌다고 부끄러움이 없는 줄 아셨어요?".
"아닙니다.
그건 아니지만 무지하게 용감하고 남자같은 성격일거라 생각했습니다만...".
그는 변명하듯 말을 얼버무렸다.
손에 들고 나온 셔츠를 도로 입으려는 데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막았다.
"됐어요! 멋있어요! 남자의 벗은 가슴은 숨이 막혀요".
이건 또 웬 내숭인가. 그녀는 태도를 완저히 바꿔 테이블 앞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끄러움이 많다고 섹스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나 키스를 좋아해요".
그리고 멕 라이언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와 키스를 했다. 녹아버릴 듯한 프렌치 키스였다.
"얼굴도 멋있고 가슴도 멋있지만 제일 멋진 건 이 꽁지머리예요".
엣, 꽁지머리 그거 어저께 자르지 않았는가? 멕 라이언이 그의 꽁지머리를 쓰다듬을 때 너무 이상했다. 꿈깨! 그렇지 그럴줄 았았지. 꿈인줄 알았다니깐. 그는 눈을 설며시 뜬 채 옆 좌석을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