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양건 3단 ●서봉수 9단
기사입력 1996년 07월 11일 15시 16분
**끝없는 수읽기의 밀림을 헤치고… 본선토너먼트 제4국 제9보(119~125)=흑 119는 손 뺄 수 없다. 손빼는 즉시 백 `가', 흑 `나', 백 `다'로 우하귀 백이 주검에서 깨어난다. 망외의 전과. 우세를 낙관한 서 9단의 착각에 힘입어 다섯점의 흑진주를 품게 됐지만 양 3단의 기쁨은 찰나에 달아난다. 흑●(흑 95)가 놓인 시점부터 예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단숨에 백 넉점을 쓸어담으며 우변 19로를 길게 연통한 흑진은 가히 천리장성의 웅자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양 3단의 유일한 희망은 중앙공격뿐인데 상대는 20년간 가파른 정상을 오르내리며 , 이창호, 유창혁 같은 신구세대 절정고수들의 창칼 속을 누벼온 타개와 수습의 명인 서봉수다. 갈길은 정해져 있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길. 오직 감각으로만 앞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한발이라도 어긋나면 천길 나락.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끝없는 수읽기의 밀림을 헤쳐간다. 10분, 20분, 30분…. 백 120은 39분 25초만에 떨어졌다. 이 대국을 통틀어 가장 긴 시간. 엄청난 정신에너지를 소모하며 장고에 빠졌던 양 3단은 흑대마의 앙가슴에 비수를 겨누며 살상(殺傷)의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한다. 상대가 마지막 결의를 밝힌 이상 간과할 수는 없는 일. 서 9단의 손길도 신중해진다. 흑 123은 13분 45초만의 결행. 절묘한 타개의 맥점이다. 검토실에서도 `역시 서봉수'라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백 124는 얼핏, 물러서는 수 같지만 최강수단. 기분으로는
백 1로 올라서고 싶은데 흑 2, 4로 버티는 수가 의외로 탄력이 있어 공격이 안된다. 흑 8은 우상쪽 백에 대한 선수. 백이 손빼면 흑 A로 죽는다. 게다가 흑 B까지 선수, 흑은 자체로 완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