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 나이트] 소신없이 남 따라하는 행동
기사입력 1996년 07월 05일 16시 40분
대 예술가 헨리 무어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남의 방법이 더 타당해 보인다. 나 자신도 초기에 남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많았다." 창작을 생명처럼 여기는 예술세계에서도 그러는 데 하물며 보통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는 오죽할까. 우리의 어떤 결정들은 소신보다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따라하기'가 대부분이다. 필자의 실화.
경마장에 간 것부터가 내 생각은 전혀없이 남따라 간 것이었는데, 데리고 간 사람은 `잘 생각해서 소신껏 해야지 큰 게 터진다. 남이 찍은 번호 눈치볼 것없다'라고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줄을 서서 마권을 살 땐 예쁜 아가씨가 산 엉뚱한 3인가하는 번호였다. 날 데리고 간 사부는 상당액수의 배당금을 거머쥐고서 소리치는 거였다. "남의 번호를 보면 안돼! 내가 산 번호가 천하무적이었어! 하다 못해 이름이라도 보고 걸었으면 됐을 거 아냐!" 다음엔 더 많은 돈을 걸었는데 사부가 사는 8번을 흘깃 보고…. 그러나 결과는 꽝이었다. "소신대로 행동하는 사부가 그 번호를 사길래…"했더니 줏대가 없다면서 원래 사람들 왕래많은 길거리에 집을 지으면 3년 걸린다고 했는데 너가 지으면 10년은 걸릴 것 같다는
모욕적인 말도 마구 해대는 거였다. 돈은 거의 다 잃어 가고 있었지만 배는 고팠다.
사부께선 도넛이 먹고 싶다며 사오라 했다. 그런데 매점엘 다녀 온 내 손엔 도넛 대신 핫도그가 있었다. 사부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때 가서야 나도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어떤 아가씨가 바나나와 핫도그를 사길래 덩달아 사고 만 것이었다. 더 계시겠다는 사부한테 겨우 택시비를 얻어서 집에나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앞서 택시를 잡는 한 아가씨가 "자양동!"을 외치더니 차에 올랐다. 이 때 나도 `자양동!'이라고
소리치고 택시를 탔는데 자양동을 향하는 차안에서 나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이거 내가 소신이 없긴 하군! 우리 집은 자양동이 아니라 강서구 가양동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