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28)
기사입력 1996년 07월 02일 15시 57분
++++ 서머 타임 (5) ++++. 그녀는 자기 칵테일을 다 마신 다음 일어서려고 했다. 아쉬운 시간. "한잔 더 하시죠. 요번엔 제가 칵테일을 한잔하고 싶은데". 그는 파인주스 잔을 비우며 사정하는 투로 말했다. "그러세요. 그럼 이번엔 제가 주스를 마실래요". 그는 재빨리 메뉴판을 훑으며 뭘 주문할까 고민했다. 칵테일 이름들이낯설다. 모두 이상한 영어 이름들이다. "위스키 더블!". 아무래도 제일 독한 건 이놈이 아닐까. 자꾸 떨리는 지금, 용기를 갖기 위해선 독한 걸 털어넣을 필요가 있다. "무슨 일하세요?". 처음 만난 남자에게 여자가 당연히 처음으로 하는 질문. 그는 잠시 머뭇하다간 태연스럽게 거짓말을 해댔다. "동네 약국을 하고 있습니다. 가게를 형네 가족한테 맡겨놓고 며칠 놀러왔죠".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다. 그의 형은 실제 약대를 나와 동네약국을 하고 있다. 신경외과 의사 운운 안한건 골이 아파질까봐서다. 머릿가죽을가르고 머리뼈를 떼어네 골수술을 하는 이야기가 뭐 그리 유쾌하겠는가?. "실례지만...성함이?" "장유미예요". "장유미씨도 일을 하고 있습니까?" "예, 전 의사예요". 거침없이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넘어갈 뻔했다. 젠장 혹시 또 신경외과 의사다, 그러는 거 아닌가. "전 꽃병원을 하고 있어요". 뭐야, 서초동 꽃마을에 있는 병원 이름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입니까?". 그녀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시원스럽게 웃는다. "감기에 걸린 꽃이나 영양실조에 걸린 꽃들을 치료해요. 주인이 장기간 출장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꽃들을 입원실에 입원도 시켜주고요". 그는 `쿡'하며 웃었다. 감기걸린 꽃이라?.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꽃병원이란 건...그래 장사가 됩니까? 주인들이 환자를 데리고 많이들 옵니까?". 그녀는 짐짓 심각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주인들은 꽃들을 살리려 노력하기 보다는 계속 새로운 꽃들을 구입하고 그냥 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꽃들을 슬프게 하는 거예요". 어디까지가 진담이고 어디까지가 농담인가. 얘기 내용은 황당하지만앞에 앉은 이 젊은 여자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지금 상황에선 거짓말 여부를 따지는 건 바보짓이다. 나도 방금 편한대로 약국주인이라 내뱉었고 그녀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설사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내가 말한 것 보다는 얼마나 상큼하고 귀여운 진짜 거짓말인가! 이 여자의 감각이 맘에 든다. 꽃병원의 닥터인 장유미, 마음에 쏙든다, 들어.
그가 자기도 모르게 위스키를 한번에 훌쩍털어넣을 때 그녀가 일어섰다. 일어서며 급하게 물었다. "내일 특별한 계획 있으십니까?" "저에게 만약 만나자고 하신다면 그게 특별한 계획이 될 것 같은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