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쓰는 ML 메시지]
기사입력 1996년 06월 18일 16시 08분
## 동포들 보면 "잘해야지" 각오
지난 주말 나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사인회를 했다.
일요일 낮 경기가 끝나고 사인회를 하기로 진작부터 결정이 되어 있었는데,
구단에서 월요일에 나를 선발로 내세운다는 방침이 세워져 사인회로 가면서도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한달도 넘게 구원 투수로 있다가 모처럼 선발로 나서는데 공교롭게도 경기 전날
사인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인회가 준비된 코리아 타운 플라자로 들어서는 순간 동포 팬들의
뜨거운 환영과 함께 모든 걱정을 순식간에 잊고 말았다.
오후 5시반에 사인회가 시작됐는데 2시경부터 동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단다.
는 물론이고 샌디에이고, 심지어는 차로 8시간이 걸리는 에서도
사인회에 참석하려고 오신 분들도 있었다.
미국에 온 뒤 2년여만에 처음 사인회를 하면서 나는 큰 책임감을 느꼈다.
동포 팬들은 코흘리개 어린 아이부터 나이가 많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아주 다양했다.
또한 내가 의 선수여서인지 동포들은 마치 가족처럼 따뜻이
대해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조국이 생각난다면서 내가 잘해주어서 너무 자랑스럽다고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꼬마들은 수줍음을 많이 탔고, 나를 만난 것이 너무 기쁜듯 밝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을 같이 찍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은듯 나를 자꾸 올려다 보았다.
나에게 건네주는 성원의 말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들이어서 감격스러웠다.
`계속 잘해주세요'라는 분들, `박선수 때문에 아들이 야구를 시작했다'는 분,
그리고 어떤 분은 내가 미국에 온 뒤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은 찬호라고
지었다는 분도 계셨다.
두시간여만에 3천번 정도의 사인을 했지만 마음은 기쁘기만 했다.
다음날 세인트루이스전에 선발로 나서 나는 1승을 보탰다.
동포들의 뜨거운 성원을 생각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던졌고, 5회 동안 1안타만
맞았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나는 생각했다. `승리를 거둔 것도 기쁘지만 어제의
사인회가 더욱 뜻깊은 일이었다고.'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를 아껴주는 팬들을 위해 자주 사인회를 열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