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11)
기사입력 1996년 06월 14일 14시 31분
//// 보디가드(4) ////. 영화에서 정말로 정말로 많이 봐 왔던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자인질을 잡고 총을 버리라는 지겹게 낡은 수법, 혜령은 테이프로 입이봉해지지 않았다면 악을 쓰며 외쳤을 것이다. "이건 영화가 아니야.
총버리면 안돼! 쏴버려! 이 개같은 놈을쏴욧! 나 총알 맞아도 좋단 말이야!". 그녀 뒤에 숨어 머리칼을 움켜쥔 채 떠드는 이 중국놈에게 치욕을느꼈다. 다 쏴버리란 말이야! 그녀는 눈길을 양칼지게 세워 보디가드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무표정했다. 이마에 총을 맞았는지 얼굴한쪽으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지만 꿈쩍도 않고 이쪽을 노려본다. 냉정한 자세로 선 채 `골드 피손' 권총을 올리지도 않은 중간 상태로 어정쩡하게 들고 있다.
그녀 뒤에 숨었던 중국 놈이 또한번 악을쓴다. 총을 버리라고 고함을 쳐대며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불길이 `펑' 일었다. 번쩍 치켜든 `골드 피손'이 그녀를 향해 냉혹하게 발사된 것이다. 혜령은 자기가 맞았다 생각했다. 기절한 듯 주저 앉았지만 아픈 곳이 없었다. 피가 나온 곳도 총알 구멍이 난 곳도 없다.
겁에 질려뒤를 돌아보니 중국놈이 나자빠져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무너졌다. 공포감과함께 살았다는 기쁨이 엉켜 울음만 엉엉 터뜨렸다. 보디가드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영화촬영장의 남자주인공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눈부셨다. 이 순간의 이 남자는 신이었다. 지옥과 0.01mm거리에 있던 그녀를 구원해 주었다. 이 순간을 영화가 아니라 실제일이라고 생각하니 뒤늦게 또다시 `쇼크'가 왔다. 그녀는 아까 납치당하던 순간과는 달리 안심한 상태에서 기절했다. 대왕은 쓰러진 여자를 일으키기 전에 살아있는 녀석의 곁으로다가섰다. 아까 우지기관단총 탄창 한개 전부를 그에게 쏟아대던 놈이다. 차가 가로등과 충돌할때 도로밖으로 퉁겨나와 바닥에 짐처럼 내팽개쳐졌다. 아스팔트 바닥에 유리창살을 무수히 깔아놓은채 반죽음으로 신음해댔다. 아까 날 시체로 만들려던 놈. 답례를 안 할 수 없다. 대왕은 마치 축구볼을 걷어차듯 있는 힘을 다해 구둣발로 내질렀다.놈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골드 피손'을 허리 두춤에 꽂아 넣을 때 비로소 자신이 총에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른쪽 머리를 만지자 피가 끈적끈적 번져나온다. 쿨컥쿨컥 뿜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쭈르륵 흐르는 정도라면 별 문젠없다. 총알이 이마를 스쳐 찢으면 지나간 정도일 것이다. 그는 피 묻은 손을 셔츠에 문지른 채 혜령을 향했다. 그녀를 안아 일으켰을 때 언덕 저편 모퉁이에서 차량들이 시끄럽게나타났다. 총소리를 듣고 온 촬영장 사람들, 주위가 온통 시끄러위지고 매니저가 나타났다. "참 나, 저 여잔 꼭 내가 조혜령이랑 단 둘이 가까이 있으면 달려온다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