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운명(運命)의 장(章)(20)
기사입력 1996년 04월 11일 15시 59분
무산파파는 신형을 날리는 동시에 수중의 채찍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언뜻 보기에는 불규칙한 마구잡이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실상 채찍의 움직임은 정교하고 치밀했다.
게다가 이 일초는 무산파파의 심후한 공력이 그대로 얹혀 있었으므로 그 위력이란 상상을 불허했다. 능히 만근의 바위를 부숴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세였다.
하지만 상대는 대 일심부의 부주인 묵양대인이다.
그의 고목나무 같은 손이 수직으로 공간을 갈랐다. 순간 미세한 파공음이 울리며 면돗날 처럼 예리한 기류가 작렬하였다.
아주 단순한 동작이었자만 묵양대인의 수도에서 발출된 경기는 살벌하기 이를데 없었다.
파파팍 하는 음향이 터짐과 더불어 나직한 비명도 그 뒤를 따랐다.
"욱"
무산파파는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하며 공중에서 균형을 잃고 순식간에 이 장밖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궁수월이 재빨리 신형을 날려 그녀를 부축했다.
무산파파의 모습은 비참하다.
수중의 채찍은 손잡이만 남겨두고 여러동강으로 나뉘어져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입에서는 연신 시뻘건 핏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황보백령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무산파파를 단 일초에 부상입혔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이다. 그녀는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고수급 인물이 아니었던가.
모용추가 조소를 흘리면서 황보백령의 아래 위를 훑었다.
"황금사원의 공주가 경국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 미모를 지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듯 싶군,"
황보백령도 응수한다.
"일심부가 심상치 않은 자세로 심양에 은거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으나 중원까지 진출하여 황금사원의 발목을 잡을 줄은 진정 몰랐소. 보아하니 당신이 그 교태로움으로
강호의 준걸들을 미혹 시킨다는 요사스런 장본인이로군."
모용추는 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그 유명한 경호무사를 보여주지 않으려는거요? 혹시나 내 유혹에 넘어가 경호 상대를 바꿀까봐?"
"누굴 말함인가?"
모용추의 입가에 교태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소야!"
"음"
황보백령은 입을 다물었다. 모용추는 이제 눈빛을 반짝이며 묻는다.
"동방산장의 귀공자이지. 대황제일의 검객으로 자타가 인정하며 목엽이라고도 불린다고 하던가. 그는 왜 나서지 않나?"
"그는 없다."
모용추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럴리가? 그런 사람을 쉽게 놓아줄 정도로 그대는 어리석은가? 난 믿을 수가 없는걸. 황보백령은 절대 그럴리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