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운명(運命)의 장(章)⑬
기사입력 1996년 04월 03일 18시 51분
그는 아주 고귀한 기품과 풍모를 지닌 귀공자로서 말투나 어조로 미루어 보아 역시 동방출신이 분명했는데, 나는 그가 세상에 찾아 보기 힘든
진정한 영웅이라고 느꼈기에 물어 보는거요!"
목엽의 표정은 저절로 굳어졌다.
'그렇다면 무현왕자가 틀림없다!' 아귀는 목엽의 표정을 보더니 물었다.
"당신은 그를 알고 있소?"
"그분은 분명 우리 동방의 왕자로서 바로 이 제왕학의 주인이 되실분이다."
이번에는 아귀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이오?"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왕자꼐서는 지금까지 청나라에 의해 심양성에 볼모로 잡혀 계셨지만 언젠가는 귀국하여 동방왕가를 다스려야할 막중한
몸이시지."
"그렇다면 정말 잘되었소. 나는 그분께 어떻게 말값을 갚을까 고민중이었는데 그 제왕학이란 걸 넘겨주면 되겠구려."
"너는 말값을 만배로 갚는 셈이 될 것이다."
목엽의 눈동자는 기이하게 번쩍였다.
'동방왕가에서 제왕학을 무현왕자에게 은밀히 전달한다는 건 필경 우리 동방의 운명과 관계되는 어떤 대사(大事)가 도모되고 있는 것이리라.'
목엽은 문득 시선을 들어 하늘을 올려댜보았다.
'아! 세상은 이렇게 엄숙하고도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거늘 나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사사로운 소사(小事)에 얽매여 폐인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니….'
목엽의 얼굴에는 자책과 부끄러움의 빛이 스쳐갔다.
기세좋게 타오르는 모닥불.
목엽은 상처의 고통도 잊은 채 하늘의 별 무더기를 빛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나는 내 손에 의해 죽은 형에게 사죄하는 뜻에서라도 형이 사랑했던 우리 동방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정말로 영원히 죽을 것이다!'
진정 그는 형을 살해했던가?
목엽의 눈동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형형한 광채를 발산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굳건한 결의가 나타나고 있었다.
아아! 목엽은 이 순간 다시 태어 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이 탄생한 것이다.
이윽고 목엽은 밝은 표정으로 아귀를 돌아보았다.
"나는 너에게 새로운 탄생의 은혜를 입었으니 다시 한번 감사하겠다. 네 은혜를 결코 잊지 않으마."
아귀가 아니면 목엽은 정말 한적한 황야의 어둠 속에서 그대로 시체로 변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귀는 냉담했다.
"나는 말로만 고맙다고 하는 사람은 딱 질색이오."
"하하…. 그렇다면 내가 술 한 잔을 사야겠구나."
"기왕이면 기녀(妓女)있는 술집으로 갑시다."
"하하하하…."
결국 목엽은 대소를 터뜨렸는데 그것은 실로 너무나 오랜만에 되찾은 사나이의 호쾌한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