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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급격한 심리적 위축으로 장기간 경제에 타격을 줬던 경험을 갖고 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국내 민간소비 증가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등 내수경기가 타격을 받았다. 2014년 세월호 사태와 이듬해 메르스 사태 때도 소비 위축과 내수 침체가 경기의 발목을 잡았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당시엔 사회 전체가 얼어붙었고 자영업자들은 지금까지 그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연말 송년회와 각종 모임으로 활기가 넘쳐야 할 상권에 심상찮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전국의 소상공인 외식업 사업장의 신용카드 매출이 작년보다 9.0% 감소했다고 한다. 과거 두 차례의 전직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엔 내수 타격을 중국 경기나 반도체 경기의 호조가 메워줬다지만 지금은 우리 경제가 탄핵정국의 여파를 감당해낼 체력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올해 분기 성장률은 2분기 -0.2%, 3분기 0.1% 등으로 부진했고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었던 수출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최근 국내외 연구소와 국제기구가 발표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대개 2% 선에 턱걸이한 수준이지만 산적한 대내외 악재를 감안하면 향후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외 각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각자도생의 대응 전략 마련에 분주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5% 관세 부과를 예고한 캐나다는 경기둔화와 불확실성 대비를 위해 다섯번째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유럽도 성장둔화에 대응하려고 3회 연속 정책금리를 내렸다. 경기 부진 속에 미국과 무역전쟁을 앞둔 중국은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 등 연일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다음 달 출범할 차기 트럼프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로 무장한 초강경파 인사들로 경제팀을 꾸린 뒤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엄혹한 대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경제와 민생을 위한 정책과 집행이 멈춰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소추 과정의 불확실성이 하루빨리 제거돼야 함은 물론이지만, 이제는 정치 상황과 별개로 경제는 돌아가야 한다. 추가경정예산 등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과 정책을 총동원하여야 할 시점이다. 내수 부진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불안한 외환·주식·채권시장을 안정시킬 정책 기금들도 가동해야 한다. 반도체특별법, 전력망확충특별법 등 국회에 계류된 경제분야 법안도 조속히 통화시켜 업계를 지원해야 한다. 부동산과 환율 불안보다 식어가는 경기를 되살리는 게 급선무라면 한은이 과감한 추가 금리인하를 통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적기를 놓치면 우리 경제는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hoonkim@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