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소규모 시설, 후원 못받아…칫솔·치약·샴푸 등 필수 생필품 부족
(대구=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연말이 다가오면 후원 물품을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올해는 조용합니다."
대구 '애망장애영아원·애망요양원'에서 17년째 근무 중인 장춘호 영아원장은 지난 20일 '연말을 앞둔 후원 분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사회복지시설인 애망장애영아원·애망요양원은 지난 1952년 설립돼 72년째 운영되고 있다.
20일 오후 기자가 방문한 시설에는 조용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이 시설에는 뇌병변·지적·시각·청각 장애 등을 앓고 있는 90여명이 머물고 있다.
장 원장은 "해가 갈수록 개인 후원이 줄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올해 신규로 등록한 개인 정기 후원자가 10명도 안 된다"고 털어놨다.
장 원장은 "특히 코로나19 시기가 지나고 난 뒤부터 더 어렵다"고 했다.
장 원장과 박은희 애망요양원장의 안내를 받아 방문한 생필품 물품 보관 창고는 썰렁했다.
칫솔, 치약, 샴푸 등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생필품이었지만 '한 달'이면 모두 소진하고 남는 게 없다고 두 원장은 설명했다.
박 원장은 "생필품·식품 보관함이 예전 같으면 꽉 차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도 못 미친다"며 "다 소진될 때까지 후원이 없으면 자체 비용을 들여서 구매해 충당한다"고 말했다.
식품 보관 재고를 확인하던 한 직원은 비어 있는 선반을 가리키며 "예전에는 물품 둘 곳이 없어서 바닥에 쌓아두기도 했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두 원장은 기업이나 복지단체의 후원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했다.
다만 장 원장은 "시설이 아닌 복지 단체에 기부를 하고 세금 혜택을 받으려는 개인 후원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라며 "규모가 큰 복지시설의 경우 복지단체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원받을 확률이 높지만, 소규모 복지시설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쪽방촌 주민을 돕는 '대구쪽방상담소' 상황도 비슷했다.
대구 서구 평리동 대구쪽방상담소 한편에 마련된 '다있소' 공간을 둘러보니 생필품이 충분히 채워져 있지 않았다.
이곳 역시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칫솔, 치약, 샴푸 등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대구쪽방상담소 오현주 팀장은 지난해 1월∼11월 확보한 후원금에 비해 올해 같은 기간 확보한 후원금이 48%가량 적은 금액이라고 했다.
오 팀장은 그러면서 "경기가 힘들고 물가가 많이 올라서인지 후원이 감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쪽방상담소 강정우 사무국장은 "코로나19 기간에는 대구시에서 지원받아 매달 생필품을 쪽방 주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며 "현재는 무더위 지원 이외에 별다른 지원이 없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쪽방 주민들이 상담소 직원들에게 '왜 이제 생필품을 안 주냐, 딴 데 줬느냐'라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고 강 사무국장은 전했다.
강 사무국장은 "감사한 점은 제철마다 과일을 보내주거나 소량이지만 칫솔·치약을 사서 상담소 앞에 두고 돌아서는 청년 등 개인 후원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우 단순히 생필품만 지원하는 것이 아닌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해 사회 복귀를 돕는 사회공헌 활동을 주로 진행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대구에 본사를 둔 한국가스공사(KOGAS)가 2016년부터 시작한 노숙인·쪽방주민 대상 자활 지원 사업 결과 지난해까지 100여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대구지역 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기업형 후원이나 지자체 지원과 별개로 개인 후원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동구의 한 복지관은 2017년 194명이던 정기 개인 후원자가 2024년 75명으로 감소했다고 전했다.
이 복지관 관계자는 "조직이 크고 직원이 많은 시설은 복지단체의 공모 사업에 선정될 확률이 높지만, 소규모 시설은 개인 후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아직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장 동네에서 복지시설을 오래 운영하신 분들이 '이제는 더 운영하기 부담스럽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대구대 양난주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를 받는 법정 사회복지시설이 개인의 후원에 의지해 운영되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며 "안정적인 운영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또 "민간 비영리 단체의 경우 개인 후원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리고 공감대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현행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회복지 문제에 대해 민간 비영리 단체가 자발성과 창의성을 활용해 활동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psjpsj@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