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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증가 억제·주차난 해소' 취지 못살려 제도 효과 의문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제주시 내 주택가의 한 사설 주차장은 비싼 연간 임대료에도 해마다 개인 차고지로 모두 임대된다.
실제 주차장을 이용하기 보다는 제주도에서 차량을 이전 또는 신규 등록하려면 행정상 '차고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 사설 주차장의 연간 임대료는 땅 주인이 부르는 가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략 90만원 안팎이고 100만원이 넘기도 한다.
제주도가 운영하는 공영 주차장도 차고지용 연간 임대료로 90만원을 받고 있다.
제주도는 차량을 구입하거나 이전할 때 차고지를 확보해야만 등록이 가능한 '차고지 증명제'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다.
차량 증가 억제와 주차난 해소를 위해 단계적으로 시행하다가 2022년부터 전면 도입했다.
본인 소유 주택이 있거나 거주자용 주차장이 충분한 대단지 아파트에 산다면 차고지 확보에 문제가 없지만 세 들어 사는 집에 마땅한 차고지가 없다면 상황이 다르다.
이 경우에는 주소지로부터 직선거리 1㎞ 이내 공영·민영 주차장, 타인 소유 주차장 등을 임대해야 한다.
집 없는 서민은 제주에서 자동차를 소유하려면 공영이나 사설 주차장을 돈을 주고, 빌려야 하는 셈이다.
5일 제주시·서귀포시에 따르면 차고지 증명제를 위해 차고지를 임대하는 건수는 제주시 6천457대, 서귀포시 2천248대로 집계됐다.
공영 주차장이 제주시 535대·서귀포시 85대이고, 사설 주차장(민간 주차장 및 종교·복지시설 등)이 제주시 5천922대·서귀포 2천163대 등이다.
제주시의 경우 전체 차고지 등록 차량(9만1천962건대)의 7%가량이 별도로 돈을 내고 차고지를 임대했다.
차고지 증명제가 서민들에게 이처럼 부담을 주고 있지만, 온갖 편법이 동원돼 차량 증가 억제, 주차난 해소 등의 제도 효과는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A씨는 "동네에 차고지 증명용으로 주차면을 빌려주는 사설 주차장이 있지만 주차장이 찬 적을 본적이 전혀 없다"며 "등록만 해두고 실제로는 골목길 이면도로에 세우고 있다. 차고지 증명제를 하나 마나"라고 말했다.
또 이용자가 많은 일부 사설 주차장에서는 주차 영업을 위해 주차면을 저렴하게 차고지로 빌려주고 실제 주차는 하지 않는 조건을 거는 편법을 쓰고 있다.
더구나 집과 상가가 빽빽이 들어서 주차장이 부족한 제주시 원도심의 경우 차고지를 임대할 공간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도내 유료 공영주차장은 제주시 6천여면, 서귀포시 1천8천여면 등에 불과해 연일 증가하는 차량의 차고지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일부 차량 소유자들은 차량을 제주도 이외 지역에 본인 또는 지인 명의로 등록한 뒤 차량을 제주도에 들여와 운행하는 편법도 쓰고 있다.
본인 명의의 차량 등록만 하지 않으면 차고지 증명제에 따른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차량을 구입하지 않고 렌터카를 장기로 빌려 타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의회가 지난달 30일 마련한 주민 의견 수렴 자리에서는 차고지 증명제의 단계적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재성 제주시 삼도2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했지만, 효과는 없고 오히려 위장 전입 등 범법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 제주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이도이동 갑)은 "차고지 증명제로 인해 제주도에 살면서도 주소지를 다른 지방에 두거나, 차고지를 마련하지 않기 위해 실거주를 하지 않는 먼 친척의 집으로 주소를 옮기는 편법도 있다"고 말했다.
김황국 제주도의회 의원(국민의힘·용담1·2동)은 "대형차를 운행하는 사람은 자동차세로 60만원을 내는데, 대형차보다 훨씬 작은 경차를 타는 사람은 공영주차장 임대료로 90만원을 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라며 차고지 증명제의 단계적 폐지를 요구했다.
올해 8월 기준 도내 차량은 70만9천995대(자가용 42만6천914대)다.
차고지 증명제가 전면 시행된 2022년 1월 66만1천977대(자가용 39만7천539대)에 비해 7.2%(자가용 7.3%) 늘어 차량 증가 억제 효과도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효성이 없으며 주민 불편을 야기하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현저히 침해하는 차별적 정책"이라며 차고지 증명제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청원도 2일부터 시작됐다.
차량이 계속 증가하는 제주에서 차고지 증명제 덕분에 차량 증가세가 조금이나마 억제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편법이 판을 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도는 제주연구원에 차고지 증명제 시행에 따른 연구용역을 의뢰해 문제점과 개선 사항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kos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