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시대를 맞아 낡은 것을 과감히 버리고 젊고 트렌디한 공간에서 퀀텀점프를 하자."
애경그룹 홍대 시대를 연 주역은 채형석 총괄부회장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신사옥을 구상하고, AK홀딩스·애경산업·AK켐텍 등 흩어져있던 계열사를 한데 모았다.
애경그룹의 홍대 사옥 시대를 연 것은 큰 의미가 있다. 1954년 비누 등을 만드는 애경유지공업으로 출발한 애경은 1970년대 기초화학 분야에 이어 1990년대 이후 백화점 등 유통업, 부동산개발, 항공업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따라서 이번 애경타운은 1985년 애경그룹에 입사한 채 총괄부회장이 그간 새로 벌여온 사업의 집약체라 할 만하다. 젊은 층을 겨냥한 'AK&홍대' 쇼핑몰을 구축했고 홀리데이인 호텔을 들여온 것도 이러한 맥락. 채 총괄부회장이 '사업구조나 방식의 혁신을 통해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실적을 호전시킨다'는 '퀀텀점프'란 표현까지 써가며 의미 부여를 한 배경엔 이런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지난 8월 31일 오픈한 AK&홍대는 애경의 새로운 혁신을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애경타워 1~5층에는 위치한 AK&홍대측이 밝힌 메인 타깃은 기존 홍대 상권의 10~20대, 연남동 상권 20~40대 직장인 및 가족, 공항철도 및 호텔 이용 외국인 관광객이다. 이를 위해 시코르, 나이키, 후지필름, 무지, 플라잉타이거코펜하겐, 스파오 등을 배치했고, '때때롯살롱' 생활한복 판매점이 팝업 형태로 입점한 바 있다. 총 18개의 식음료점 중 제주김만복, 르타오, 요멘야고몬, 신승반점, 게이트나인, 카페미미미 등 젊은층에 인기가 많은 곳을 홍대 상권 최초로 입점 시키는데 성공했다.
애경그룹의 새로운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실험이 본격 시작된 셈인데, 초반 반응은 어떨까. 소위 1980년~199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포미(for me)' 소비 트렌드가 두드러지며, 나만의 '시그니처 브랜드'에 열광한다. 인근 연남동이 뜬 이유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골목길, 의외의 장소에서 나만의 특별한 맛집과 멋집을 찾아내는 재미로 밀레니얼 세대와 새롭게 '소통'했기 때문이다.
반면 AK&홍대의 경우 이 소비 신인류를 사로잡을 수 있는 '한 방'은 부족해 보인다. AK&홍대는 홍대 역 메인 상권이라 할 수 있는 곳과도 다소 떨어져 있고, 연남동 핫플레이스로부터도 도보로 5~10분은 걸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AK&홍대를 찾게 하려면 이곳만의 아주 독특한 그 무엇이 있어야 했다"며 "10대부터 40대까지 아우르려는 욕심이 앞선 듯하다. 애경의 새로운 출발을 보여줄 수 있는 파격이나, 혁신이 아쉽다. 차라리 코어 타깃의 취향 저격에 보다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았나 싶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평소 연트럴파크(경의선숲길공원 연남동 구간)를 즐겨 찾는다는 직장인 김모씨(28) 또한 "대형쇼핑몰이 주는 쾌적함은 없고 그렇다고 튀는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정쩡한 느낌"이라며 "연남동에선 내가 이색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을 핫플레이스로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는데, 이곳은 잘모르겠다. 연남동에 왔다가 굳이 8차선 도로를 건너 이곳까지 찾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애경'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나요? 미완의 새로운 DNA 찾기
지난 29일 이곳을 찾은 쇼핑객들에게 첫 인상을 물어보니, '좁고 산만해보인다' '보행 공간이 협소해 오래 머무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영업면적 1만3659㎡(4132평)인 AK&홍대는 직사각형 형태로, 좌우 보행공간이 넓지 않은 편. 1층 출입구도 여타 대형몰에 비해선 크지 않고, 들어서자마자 대형 시코르 매장 맞은편에 또 다른 숍까지 배치해 '좁다'는 첫인상을 준다. 특히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나 여의도 IFC 등 대형 몰에 익숙해진 소비자에겐 더 답답해 보일 수 있다. 여기에 에스컬레이터에 붙인 초록색 컬러필름이나,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온 LED 광고판 등 애써 힘 준 인테리어가 역효과를 낸다. '젊은 감각 이미지 강조를 위한 에코블루 컬러 디자인'이라는데, 오히려 몰이 좁아보이게 만든다는 평.
그렇다면 입점 브랜드 선정 등 전체적인 이미지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AK&홍대 콘셉트는 마포애경타운이 정했고, 입점 브랜드는 AK플라자가 선정했다.
그룹의 유통업 노하우가 집약된 셈인데, 아쉽게도 AK&홍대에서 '애경'하면 떠오를 단어, 새로운 DNA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매장 배치 등에 있어서 중저가가 혼재돼 있어 콘셉트 혼란이 온다. 예를 들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만든 '애경 시그니처 존' 근처에 저가 브랜드를 배치한 점 등이다. 때문에 세련되게 디테일까지 챙기는데 성공했다기보다는, 탁상공론식 배치라는 평도 나오고 있다. '창의적 사고를 자극하는 영감의 공간'이라는 사옥 전체 콘셉트를 AK&홍대에서 섬세하게 구현해냈다고 보기엔 영 '감'이 부족해보인다는 지적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입점 브랜드들은 평일 낮 방문객 수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8월 31일 오픈 이후 현재까지 약 2개월동안 20여만 명이 AK&홍대를 찾았다. 초반 평일엔 오후 6시 이후부터 9시까지 방문객이 주를 이뤘다. 낮엔 대체로 한산한 편이다. "이달 목표 매출액을 이미 지난 20일 달성했다"고 밝힌 A매장 관계자는 "주말엔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반면 평일 낮에 손님이 예상보다 적어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B매장 관계자도 오픈 초기 관심이 사라진 뒤에 대한 걱정을 했다. 이 관계자는 "9월의 경우 예상 월 매출액인 2500만원에서 100만원 초과 달성했다"면서도 "그러나 소위 '오픈발'이 사라진 뒤에도 매출을 유지하려면 평일 방문객이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평일, 특히 낮에도 쇼핑객이 찾는 쇼핑몰이 되기 위해선 상권 특성에 따른 타깃 마케팅이 진행돼야 할 텐데, 인근 맘카페에 올라온 방문 소감 중엔 '한 번은 모르겠으나…'란 글들이 눈에 띈다. 이들이 재방문 의사가 없다고 밝히는 이유 중 하나는 유모차가 다니기 너무 좁은 통로. 또 수유시설이나 유모차 대여 시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김진태 AK플라자 대표는 취임사를 통해 "NSC(Neighborhood Shopping Center)형 쇼핑몰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으로써 새로운 유통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지역 친화적 쇼핑센터로 세심한 배려가 아쉬움을 남긴다.
이에 대해 AK플라자 측은 "평일 방문객 2500명, 주말 평균 4000명, 2개월 누적 20만명으로 기대 이상의 집객 효과를 내고 있다"며 "(입점 브랜드 평가에 대해선) 상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 노코멘트"라고 밝혔다. 유모차 대여 등의 서비스 개선과 관련, "방문고객 분석을 통해 지속적인 고객의 니즈가 있을 경우 내부적으로 고려해볼 계획"이라는 답을 들려줬다.
소통에 있어서도 상당히 여유를 부리고 있는 듯한데, 'AK& 홍대'가 과연 새로운 애경의 DNA를 찾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채 총괄부회장의 구상대로 올해가 '애경 퀀텀 점프의 원년'이 될 수 있을지 가늠할 판단 지표 중 하나로 AK&홍대의 향후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