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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선 회장, '고위간부 패싱'으로 파격소통…현대백화점그룹 조직혁신 '채찍'?

전상희 기자

기사입력 2018-01-19 08:29


젊은 직원들과의 만남을 많이 가지는 것으로 유명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잇달아 직원들과 비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밑바닥 민심'과 고충을 직접 듣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임원진의 개입과 사전 조율이 끼어들 틈이 사라지면서, 조직엔 오히려 긴장감이 넘쳐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간부 패싱'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러한 '민심 핫라인'을 통해 정 회장이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하고 조직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는 게 현대백화점그룹 안팎의 이야기다.

이는 정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기존의 불필요한 룰과 관행을 없애고 의지만 앞세우는 형식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과 오버랩된다. 정 회장이 "조직문화 개선의 본질이 일에 대해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공동의 정서와 업무환경을 만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주니어급도 직접 만나…'사전 조율 거부하는' 파격 소통법

18일 재계에 따르면,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범(汎) 현대가(家) 오너들 중에서도 특히 정지선 회장은 격의 없는 소통을 즐길 뿐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 건의된 사항들을 사내정책에 즉각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 회장이 지난 2003년 부회장 취임 후 최근까지 진행한 '주니어보드'가 대표적이다. 매달 다양한 직급·지점 40여명의 직원들과 식사를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이를 통해 정 회장과 직접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직원이 전체 임직원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다. 퇴근시간에 업무용 PC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는 'PC 오프제'와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주거지에서 혼자 사는 여직원 집에 보안장치를 설치하는 '여직원 홈 안심제도'도 직원들의 건의로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주니어보드는 정 회장의 동생인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이 이어받아 진행 중이다.

직원들이 사내게시판에 고충 등을 올리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격려 메시지와 간식을 전달하는 '사장님이 쏜다'라는 제도도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중시하는 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알려진 '비공식 만남'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과장·차장·부장 등 '시니어급'과 사원·주임·대리 등의 '주니어급'으로 나눠 소수의 직원들이 별도 연락을 따로 받아 진행된다. 소규모로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이기에, 자연스럽게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나 간부들에 대한 생생 평가까지도 가감 없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참석자들에게는 개별 연락이 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그룹 경영진도 모임의 정확한 진행 과정이나 대화 내용을 알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임원급을 배제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이 자리에선 사전 조율의 과정이 없기에, 정제되지 않은 현장의 목소리가 리얼하게 나오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그룹의 전통적인 보고 단계를 건너뛴 파격적 형식에 고위급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고위 간부 패싱'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이 최근 사장단 등 10여명이 참석한 그룹 주간전략회의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한 배경엔 이같은 비공식 만남에서 느낌 점을 에둘러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올해 초 경영진에게 "현업 부서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조직문화에 긍정적인 징표"라며 "현장의 의견을 더 듣도록 하자"고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정지선 회장께서는 워낙 소탈한 성격이라 평소 수행비서 없이 움직이셔서 모든 동선을 일일이 다 파악하는 게 어렵다"면서 "'비선 모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어 "평소 조직문화 개선과 소통을 그 누구보다 강조해왔기에, 직원들과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루어진 것이 그렇게 알려진 듯하다"며 일각에서 제기된 '고위 간부 패싱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조직문화 혁신 위한 '초강경 드라이브'

하지만 '현장 소통 강화'에 대해 재계는 정지선 회장이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직접 '칼'을 뽑은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1972년생으로 37세에 회장 자리에 오른 '젊은 보스' 정지선 회장이 취임 10년이 지나자 '관록의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소 정지선 회장은 "당장의 매출에 연연해 조직문화 개선을 게을리 하면 되레 경쟁력이 뒤처진다"고 강조하고 조직문화 전담팀을 구성할 만큼 조직문화 혁신에 같한 관심을 보여 왔고,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을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데 솔선수범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현대백화점그룹은 내부 구성원들이 환경변화에 대한 발빠른 대응을 위해 기업문화 지침서인 '패셔니스타'를 발간하기도 했다.

특히 정 회장은 말단 사원부터 부장까지 여러 직급이 섞인 주니어보드 진행에 있어서도 누구나 '계급장 떼고' 거침없는 의견 제시를 할 수 있게 했다. 정 회장은 이때 직원 개인접시에 음식을 일일이 덜어주고 항상 직원들의 말을 경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 회장이 비정기적으로 소수의 하위직 직원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이같은 조직문화 혁신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젊은 직원들도 직접 의사 개진 통로가 열리며 조직 혁신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갖게 되며, 고위 간부들은 더욱 긴장시키는 부수효과까지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새 바람을 타고, 현대백화점 측은 최근 또 하나의 신선한 제도를 채택해 재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2~3월에 집중되어 있는 자녀의 학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낼 경우 유급으로 처리가 되도록 한 것.

이에 따라 그간 회사 눈치가 보여 아이들의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함께하지 못했던 아빠들도 이젠 적극적으로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정 회장의 현장 소통이 조직 혁신뿐 아니라 직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활밀착형 변화를 만들어내면서,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오너가 열린 마음으로 동참해 회사가 좋아지고 있다"는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 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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