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 20년이 넘는 직원이 갑자기 자신의 전문과 무관한 판매 조직으로 발령이 났다. 1억원의 연봉을 받아온 기술직 전문가였던 이 직원은 키즈폰이나 스마트워치 등을 팔아야 했고, 이런 상황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텔레콤은 "업무영역을 확장하겠다"며 대면 영업조직인 다이렉트 세일즈팀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새로운 유통채널 확보라는 특별 임무를 부여받은 조직이라기보다는 내부에서 '찍힌' 직원이나 성과가 좋지 않은 저성과자를 퇴출하는 부서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989년에서 1996년 사이 각각 기술직·마케팅직으로 입사한 K씨 등 4명은 2015년 4월 이 다이렉트 세일즈팀에 배치되면서 이런 소문을 실감하게 됐다. 최장 근속 기간이 30년 가까이 되는 기술직이나 마케팅 전문가에게 SK텔레콤이 판매하라고 내놓은 상품들은 스마트워치, 키즈폰, 인공지능 스피커 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2016년 중노위는 "근로조건의 급격한 변화를 수반하는 전직명령인데도 대상자 선정의 객관적 인사기준도 없이 진행된 것을 볼 때 이 사건 근로자들이 특별퇴직에 불응하자 이뤄진 것으로 볼 개연성이 높다. 또한 영업 및 판매에 대한 체계적 사전교육이 없었던 점을 볼 때 업무상 필요성이 있어 행한 전직으로 볼 수 없다"며 이들을 원래 직책으로 복직시키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SK텔레콤은 이 판정에 불복, 법적 판단을 받겠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번에도 끝내 패소했다. SK텔레콤은 재판에서 "K씨 등이 소수의 특별직군이 아닌 영업·일반관리 등의 업무도 맡도록 돼 있는 직군이어서 당사자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했다. 또한 방문판매 유통조직을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 K씨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자들을 모은 것이며, 무엇보다 급여·복리후생 등 근로조건이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됨에 따라 경제적 불이익이 없는 점 등을 내세워 인사조치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재판부는 "K씨 등은 40대 후반에서 50대로 회사에서 연령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리고 정기 인사평가에서 수년 간 낮은 점수를 받아 왔으므로 SK텔레콤이 주장하는 방문판매팀의 설치목적 등에 기여할 인력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문제의 전보 발령에 대한 업무상 필요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무엇보다 스마트워치, 키즈폰 등을 방문 판매하는 소규모 조직에 판매업무를 담당한 적이 없는 연봉 1억원 이상의 K씨 등을 배치하는 것을 효율적 인사조치로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적재적소 배치를 통해 인력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SK텔레콤의 인사이동 방침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SK텔레콤이 K씨 등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거나 이들과 인사내용을 협의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회사 측의 권리남용 행위로 볼 수 없다"면서도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부당전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한편 SK텔레콤은 이번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항소 입장을 밝혔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업무상 필요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1심 법원의 판단에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이번 1심 법원도 해당 인사로 인해 생활상 불이익이 발생했다거나 협의절차 위반이 벌어지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업무상 필요성에 대해선 회사의 경영판단을 과소평가하는 등 기존 판례 및 사실과는 다르게 판단한 측면이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항소를 통해 다시 한 번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SK텔레콤 측은 "상대적으로 성과가 부진한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다이렉트 세일즈팀에서 성과를 내서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둬야 희망하는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선 "특정 부서에 대한 인력 현황 및 전사 평가체계 기준은 대외비 사항이라 밝힐 수 없다"는 답을 되풀이했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