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오너 4인 2차 면세대전 성적표는? 정용진 부회장이 1등

전상희 기자

기사입력 2015-11-17 09:23


두 사람은 날개를 달았고, 두 사람은 암초를 만났다. '2차 면세점 대전'에서 두산과 신세계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잡은 반면 롯데는 면세점 한 곳을 내줬고, SK(워커힐)는 23년간 유지해온 사업권을 잃었다. 관세청은 지난 14일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로 롯데(소공점 본점), 신세계, 두산을 선정했다. 부산 사업자는 종전대로 신세계로 결정됐다.

네 곳의 대기업이 참여한 이번 시내면세점 전쟁은 오너들의 진두지휘 속에 치러졌다.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승부수를 던졌던 4인이 받아든 각기 다른 성적표, 그 온도 차에 따라 향후 그룹 경영자로서 입지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룹의 사활을 건 혈투였던 만큼,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어메이징한 정용진 리더십, 두 마리 토끼 잡아

사실 신세계의 이번 재도전을 둘러싸고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미 지난 7월 신규 시내면세점 사업권 심사에서 고배를 마신 터라,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엔 유통강자로서의 체면을 사정없이 구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세계는 심사 직전에 터진 차명주식 논란까지 딛고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SK네트웍스의 워커힐이 운영 중인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했고, 부산지역까지 지켰다.

이런 성과의 배경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리더십이 자리했다는 평가다.

정 부회장은 이번 면세점 사업권 놓고 초반부터 밑그림을 직접 그려나갔다. 사업계획서에 '면세점으로 사업보국'이란 자필서명을 넣었을 정도로 강한 의지를 피력해왔다.

정 부회장은 최근 신세계그룹 대졸 신입 1년차 연수캠프에서 "국내 고객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고객까지도 신세계가 만들면 항상 뭔가 새롭고 재밌을 것이란 기대감을 심어줘야 한다"며 "오직 신세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어메이징한 콘텐츠로 가득 찬 면세점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 지분을 인수해 처음 면세점 시장에 진입한 신세계는 2013년 7월에는 김해공항 면세점, 올해 2월에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번 서울 면세점 특허권 획득을 계기로 면세점 사업 지역을 서울까지 넓히게 됐다. 신세계가 롯데와 신라가 양분해온 면세점 시장의 새 강자로 떠오를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신세계 20년 숙원을 푸는데 성공한 정 부회장은 향후 그룹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향후 그룹내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면세점 대전에서 진정한 승자는 정 부회장으로 꼽힌다.

박용만의 '뚝심 경영', 약점을 극복한 반전의 드라마

이번 두산의 승리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뚝심 경영'의 결과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올 해 하반기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박 회장은 면세사업의 경험이 없다는 최대약점을 강력한 의지로 극복했다. 오너가 사활을 걸고 나서자 그룹의 역량이 총집결됐다.

박 회장은 동대문 지역 발전을 위한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을 출범시키면서 100억원을 내놨다. 정부가 주도하는 청년희망펀드에도 사재 30억원을 냈다. 그리고 '동대문 상권 활성화'와 상생론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지난달 26일 '동대문 미래창조재단' 출범식에 참석한 박 회장은 동대문 주변 상인들을 직접 만나 애로사항을 경청하기도 했다. 또 동대문 주변의 소외계층 10%를 채용하고, 30세 미만 청년 취업을 돕기 위해 청년 고용비율을 46%까지 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면세점 사업을 통해 동대문 주변 상권과 상생하는 진실한 상생 모델을 만들 계획"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상생 차원에서 면세점 영업 면적 중 40%는 국산품에 할당하며, 사업장이 동대문인 점을 감안해 신진 패션 디자이너들을 위한 지원 계획도 세웠다.

이번 면세점 티켓은 변신을 모색 중이던 두산그룹에 큰 의미를 지닌다. 1960년대 건설·식음료, 1970~1980년대 유통·기술소재 사업 중심이던 두산그룹은 1997년 코카콜라 등 음료 사업을 정리했다. 이어 1998년 두산씨그램 등 주류 사업을 매각한 뒤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중공업과 기계 중심 그룹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건설·중공업·기계 등 주요 사업 부문이 극심한 부진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 불가피했던 두산그룹은 이번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계기로 그룹 구조를 유통 산업 위주로 재편할 수 있게 됐다. 두산 측이 밝힌 예상 매출은 첫해 5000억원, 향후 5년간 누적 이익 5000억원이다.

'내 탓이오' 신동빈, 호텔롯데 상장 먹구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승인 실패와 관련해 "상상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롯데가 월드타워점을 수성하지 못한 책임은 99% 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 롯데는 서울 소공동 본점을 지키는데 성공했으나, 월드타워점을 놓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 8조3000억원의 절반가량인 3조9494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소공동 본점을 비롯해 월드타워점, 무역센터점, 인천공항점 등을 통해 세계 3위 규모의 면세점으로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이번 월드타워점 수성 실패로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 입지 축소는 피할 수 없게 됐다. 2020년까지 세계 1위 면세점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은 수정이 불가피해졌으며, 향후 호텔신라가 신규 매장인 용산 HDC신라면세점에서 계획대로 내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경우 국내 1위 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월드타워점은 롯데그룹의 상징인 잠실 롯데월드에 들어서면서 더욱 의미가 컸던 점포다. 핵심 집객시설 중 하나였던 면세점이 철수하면서 롯데그룹이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한 제2롯데월드 역시 큰 경쟁력을 잃게 됐다.

무엇보다 당장 그룹 경영권 분쟁의 향배가 달린 호텔롯데 상장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됐다. 신 회장으로서 이번 수성 실패가 더욱 뼈아픈 이유다.

호텔롯데는 면세사업 매출이 전체의 84%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연 매출 4800억원이 발생하는 월드타워점을 잃게 되면서, 면세사업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게 부각됐다. 상장을 앞둔 호텔롯데가 투자자를 모집하는데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은 "(잠실 면세점) 탈락에도 불구하고 호텔상장은 물론 투명한 롯데, 변화하는 기업 롯데를 향한 대국민 약속을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 공백 극복하려던 최태원, 면세점 암초에 전략 수정 불가피

최근 특사로 풀려난 뒤 2년7개월의 '경영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면세사업 철수'라는 암초를 만났다

SK는 기존 워커힐 면세점 특허 재승인과 더불어 신규 동대문 면세점 특허까지 노렸으나 모두 탈락했다. 이로써 1992년 면세점을 오픈한 지 23년 만에 면세업에서 철수하게 됐다.

지난해부터 1000억원을 들여 워커힐면세점의 리뉴얼 작업을 대대적으로 해온 SK네트웍스로서는 이번 실패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워커힐 면세점의 2014년 매출은 약 2700억원이다. SK네트웍스의 연결기준 전체 매출(22조4000억원)에서 비중은 크지 않지만, 현금 창출 능력이 높고 이후 발전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때문에 면세점, 렌트카, 패션 등 SK네트웍스의 3대 신성장 사업으로 지정하고 그룹 차원의 육성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면세업 수성 실패로, 최종 소비자와의 접점이 높은 사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그룹 차원의 전략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더욱이 이번 면세대전에서의 패배는 최근 최태원 회장의 사면과 CJ헬로비전 인수 등으로 살아나던 그룹 분위기에 '찬물을 뿌리는 격'이 됐다.

경영 일선에 복귀한 최 회장은 46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가하면 지난 2일엔 SK텔레콤을 통해 CJ헬로비전을 5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동분서주해온 최 회장으로선 이번 패배로 인해 본격적으로 뛰기도 전에 전략부터 수정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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